5.2가 나오면 돌아갈까했는데 그다지 마음이 안 내켜서 요 한동안(이라고 해봤자 2달 전이지만)은 나비독 환상야화를 올클리어하고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이왕 오랜만에 건드린 여성향 게임, 하다 만 거나 좀 더 해볼까 싶어서 아라로스를 켰다가 나비독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런 아라로스도 커티스랑 마이센&미하엘을 죄다 하고 나니 시들해져서...
소장하고는 있지만 아직 손대지 않은 게임 중에 뭔가 골라보자는 생각으로 잡은 게 바로 이 넘을 수 없는 붉은 꽃이다.
여성향 노말 연애 게임으로 제작사는 Operetta Due.
이 회사 게임은 처음인데 일단 처녀작은 아니지만 19금 게임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괜찮다카더라는 얘기가 있길래 해봤는데 한 캐릭터를 끝낸 심경은 ? 이런 느낌.
성우, 좋다.
음악, 괜찮다.
근데 CG에서 빵터짐.
대체 뭐야 이 스탠딩보다 못한 CG 퀄리티는?
남캐들은 그나마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CG마다 여주인공 입술색을 마치 촌티 폴폴 나는 립스틱을 발라놓은 것마냥 칠해놔서 깬다.
성격 면에서 자기 주장이 강하고 행동력있는 여주인공이라는데 소신과 근성을 탑재했다는 점은 동감한다(내 취향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그러나 남자가 자빠뜨리면 바로 아흥아항 모드 돌입. 왜? 19금이라서??
남성향 게임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여성향 게임 아닌가.
H씬의 경우는 좀 과장을 보태서 여성향 게임의 탈을 뒤집어쓴 남성향 게임 수준. 주인공이 남자를 공략하는 게 아니라 남캐들이 주인공을 공략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다(다른 곳에선 어차피 내 선택지에 농락당하지만).
물론 여기엔 H씬 퀄리티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주로 남자 위주인 떡씬 그 자체만으로도 흠... 할 정돈데 효과음 왜 이래요??? 지금 날 웃기자는 거임????
그나마 성우분의 연기는 빛났스빈다. 이 게임에서 제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성우(중에서 스.. 스.. 스X).
어쨌든 대부분의 단점은 남캐 보정으로 100%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상쇄할만하다.
비록 내 취향에 딱 맞는 놈은 없었을지언정 나름대로 다양한 매력이 있는 공략 캐릭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한 가치는 있었달까.
총 공략 캐릭터는 6명(+2명) 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메인 공략 캐릭터가 3명, 거기서 파생되는 공략 캐릭터가 3명이다.
괄호의 +2는, 정식 공략 캐릭터는 아니지만 엔딩이 따로 있기 때문에 표시했다.
엔딩 및 각종 스포일러를 당하기 싫은 사람은 클릭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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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불치병 "부사"에 의해 여성이 격감한 대륙에서의 일막.
남방의 나라 "루스"에서 태어난 소녀 나아라는 북방의 나라 "나스라"에게 어머니를 빼앗겨 어려서 육친을 잃고 만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녀를 지탱해준 건 「오빠」처럼 따르던, 소꿉 친구이자 차기 국왕인 오리였다.
그 악몽 같은 밤으로부터 수년 뒤.
나아라는 국왕 일가의 양녀가 되어 오리의 약혼자로 보내는 나날을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했지만......
또다시 덮쳐오는 악몽── 여자를 강탈하는 나스라의 대군을 앞에 두고 결단의 때가 다가온다.
움켜쥐는 것은 종속당하는 미래인가, 그렇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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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양분하는 대하(大河)를 사이에 둔 북쪽의 나스라와 남쪽의 루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 부사는 주로 여자에게 발병하는데 걸리면 내장이 다 썩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병으로 원인과 치료법이 불명한 탓에 세간에서는 "병이 아니라 정령의 저주"라는 말조차 돌고 있다. 전 대륙을 휩쓸어 심각한 성비 불균형에 빠트린 주범. 어째서인지 루스는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나스라는 완전 직격타를 입어서 주변국에서 여자를 약탈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을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게임은 그 막을 올린다.
주인공, 나아라(ナァラ, 디폴트 네임)
어머니를 잃은 경험 때문에 자기 몸을 내던져서라도 소중한 걸 지키려는 마음이 강하다.
치료법이 전무하다고 알려진 불치병 부사에 걸렸음에도 기적처럼 생환한 전력이 있다.
다만 회복의 이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태.
자기 주장이 강한 여주인공인 건 사실이지만, 나아라의 인생에 전환점(게임의 근간)은 본인의 의지보다 휘말렸다는 느낌. 나스라에 납치당한 건 친구인 샤르와 사라나를 구하려고 뛰쳐나갔기 때문이고, 그 뒤 나스라에서 강제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친구인 샤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결정한 것 자체가 본인의 강한 의지라면 의지지만 타인의 사정이 개입되었다는 면에서 스토리를 진행시키려는 속셈이 팍팍 드러나는 전개였다고나 할까.
아, CG가 옆의스탠딩 이미지만큼만 됐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를 표현하자면 개인적으로 스톡홀름 신드롬, 혹은 흔들다리 효과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납치당한 충격과 분노로 나스라 남자는 모두 적! 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나아라였으나 눈앞에서 그들이 사람 냄새 좀 풍기자 나스라에도 다 그런 남자만 있는 건 아니구나,괜찮은 사람이었어 > 폴링인럽♡ 삼단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납치범이든 살인범이든 대개는 그들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은 의외로 닥쳐보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 법이긴 하지만, 적대심을 품고 있던 상대에게 '결국 저녀석도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인상을 가지면 상황은 여전히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도 적대감이 반동 작용을 해서인지 그 뒤는 오히려 술술 풀리게 되는 고정적인 패턴이라 식상하달까, 내 취향이 아니랄까.
일단 나스라로 납치당하고 나면 메인 캐릭터 3명을 만나게 되고 좀 지나서 이 선택지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삼거리길.
즉, 분기점이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서 메인 루트가 나뉘게 된다.
리뷰는 선택지 순서대로.
눈앞을 지나간 여자가 신경쓰였다──── 토야/루지 루트
토야, 25세
메인 공략 캐릭터.
나스라의 왕이자 나아라 일행을 납치한 장본인.
평소 게임을 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캐릭터 순으로 공략을 시작할 때가 많다.
그러나 토야는 진 히어로(메인화면을 보라)라서 딱히 회차 제한은 없었지만 혹시 모를 다른 캐릭터 네타 방지를 위해서 뒤로 미뤄놨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토야부터해도 아무 상관없다(...)
어쨌거나 모든 시작은 납치 ㅇ<-<
루스녀 약탈은 사실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 선왕인 아버지가 정한 법이었지만 토야는 그 법을 폐지할 수 없다.
나스라의 법을 제정하거나 폐지하는 건 왕 혼자만의 독단이 아니라 의회의 지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
토야가 할 수 있는 일은 약탈한 여자들을 남자들한테 강제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최저한의 권리 보장 뿐이다.
이대로 여자를 계속 약탈해서 만들어가는 미래에 나라가 어떻게 될 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기에, 그는 원흉인 부사의 치료법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토야 루트는 메인 중의 메인, 진 히어로답게 연애에 빠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으며 어지간한 설정이란 설정은 다 갖다 붙여놨다.
공략 캐릭별로 비중의 차이야 없을 수 없다고 해도 토야를 대놓고 팍팍 밀어줬다는 게 확 느껴진다. 뭐, 그래봤자 뒷 내용 예측도, 결말도 너무 쉬워서 재미있다기보단 무난무난한 루트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아라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건 모든 루트 공통으로 도피 사건을 일으킨 샤라가 받아야 하는 벌을 자처해서 대신 받았기 때문이다.
나스라에 잡혀온 루스 여자들은 세 명이서 한 조를 짜게 되는데, 그건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나머지 조원들이 대신 벌을 받게하기 위해서다.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애초에 그 한 사람이 누가 됐든 셋 중에 하나만 벌을 받으면 된다는 얘기.
샤라는 나아라에게 좀 깊은 우정(을 뛰어넘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기에 자기 벌은 자기가 받겠다고 날뛰지만, 유일하게 토야 루트에서는 입다물고 넘어가기 때문에 오오진히어로오오 의 위엄을 보여줌.
그리고 바로 뒤로 이어지는 초야 의식은 이 루트 최고, 최대의 개그 포인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첫날밤부터 강간하는 누구씨나, 문진(...)을 넣어서 처녀막을 찢으라고 요구하는 변태하고 비교하면 단연 빛나는 진히어로님 되시겠다.
초반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되고 중간중간 스토리 진행 완급이 절묘한 편이다.
게임을 좀 진행하다보면 앞서 언급했던 각종 설정과 복선에 대해서 풀리게 된다.
어릴 때 나스라에 빼앗긴 어머니가 토야의 시녀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일찍 밝혀지는데, 이를 기점으로 나아라는 자신이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꿈으로 꾸면서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 과거의 기억이란 바로 나아라와 토야의 관계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루스와 나스라의 국경에 있던 꽃밭에서 조우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꽃밭에서 같이 놀았으며 나아라의 첫사랑이 그 토야인데다 결혼 약속까지 한 상태(!)
거기다가 심지어 부사에 걸렸던 나아라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토야 덕분이었다는 (좀 설정이 과한) 진실.
그 사실에 기뻐하며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나아라와 달리 토야는 여러가지로 석연찮아하는 모습을 보이며 나아라에게 닿는 걸 꺼려한다. 첫 정사씬에서 '심판의 업화에 이 영혼이 불타더라도 나아라의 사랑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이라는 토야의 대사를 보고 설마 바꿔치기한 쌍둥이는 아니겠지? 했었는데, 왜 아니겠는가. 이럴 경우는 아니겠지가 바로 정답인 법(...)
나스라에는 쌍둥이 정령에 대한 불길한 전설이 있어서 나스라의 왕가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동생은 탄생과 함께 죽이는 게 관례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딴 전설을 눈꼽만큼도 안 믿었던 토야의 아버지, 즉 선왕은 한 쪽에 무슨 일이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스페어로 동생 쪽을 지하에 유폐해서 몰래 키우기로 결심한다. 스페어의 인생을 살아야 하기에 이름도 똑같은 토야, 교육도 친구도 마찬가지로 둘이서 하나의 토야였다고. 그렇게 모든 게 똑같은 두 사람이었지만 성격만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형은 루스에서 여자를 약탈해오는 아버지의 방침에 거부감을 느끼고 국경에서 만난 루스 여자아이와 친하게 놀아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던 반면, 동생은 독약 만들기가 취미로 사람을 죽여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위험한 소년. 그런 동생 토야를 유일하게 사랑해주고 보살펴준 것이 바로 나아라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어쨌거나 요컨대 나아라가 국경에서 만났던 것은 형쪽의 토야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생을 가엽게 여겼던 형의 배려로 딱 한번 서로 바꿔치기 해서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자기가 밖에 나가서 토야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갈망하게 된 동생이 형을 찌르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바뀌게 된다── 는 개뻥. 차라리 이 스토리였으면 진부하긴해도 괜찮았을텐데 현실은...
찌른 것까진 사실이었으나 그건 미수로 끝나고, 그 뒤에 형은 아버지의 정책에 반감을 품은 끝에 모반을 획책하다 딱 걸리고 만다.
그 결과 선왕은 아들 둘의 입장을 역전시키려 했는데 그때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했다고.
자기가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형의 죽음 및 어릴 때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꽃밭 소녀(나아라)에 책임을 느낀 토야는 자아를 버리고 형이 되어 형의 꿈을 실현해서 형이 바라던 삶을 대신 사는 걸로 속죄를 할 생각이었다. 나스라의 여자 사냥 금지와 부사의 치료법 개발이 형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애니웨이.
진 히어로지만 의외로 엔딩 수는 고작 3개 뿐.
END紅
이걸 붉다라고 해야할지, 한자 그대로 읽어야 할지, 일본식으로 읽어야 할지 곤란한 엔딩명.
여하튼 제일 빠르게 볼 수 있는 배드 엔딩으로 토야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나아라가 루지랑 사이가 좋아지고 싶다고 하거나 루스와 화평을 위해 스렌이 나아라를 보내려고 할 때 대답을 잘못 고르면 토야의 잠재되어있던 얀데레끼가 터지면서 발목에 족쇄 및 약물 투입 > 강제 붕가붕가 > 자신이 어릴 때 갇혀있던 지하에 유폐 테크를 탄다.
갑자기 소식을 알 수 없게된 나아라를 되찾으려는 샤르와 사라나가 나아라에게 단검을 전해주며 토야를 찌르고 탈출하라고 하지만(인어공주?) 갈팡질팡하던 와중에 토야가 찾아오고, 그는 나아라의 손에 있을 리 없는 단검을 보게 되면서 더이상 자기 옆에 있어주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죽여버리겠노라 칼을 빼든다. 토야의 손에 살해당할까봐 무서워하던 나라는 저도 모르게 단검으로 토야를 찌르게 되는데 사실은 토야가 내리치려고 했던 것은 칼이 아닌 칼집이었다. 자신이 나아라한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지만 더이상 어떻게 해야 나아라가 곁에 있어줄지 몰랐다고. 그렇게 나아라 손에 토야가 퇴갤하면서 끝.
END 낙원(楽園)
과거의 토야를 긍정하는 발언─ 우리 만남은 운명이라느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 남편은 당신뿐이라느니 과거의 맹세가 어떻다는 둥 하는 발언으로 현재의 토야를 까면 뜨는 엔딩.
나아라는 루스와의 전쟁에 출진한 토야를 쫓아갔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의붓 오빠인 루스의 왕, 오리의 손에 토야가 죽은 뒤였던 것이다. 나아라는 그대로 루스로 되돌아가게 되고 토야가 죽은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 생활을 보낸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오리는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 거라며 강제로 나아라를 겁탈해서 애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든다.
그 이후 성안에 소동이 생겼을 때 우연히 꽃잎을 따라 방을 나가게 된 나아라가 토야의 환상을 쫓아가다 벼랑에서 뛰어내려 자살.
시신조차 성하게 남지 않은 나아라를 앞에두고 오열하는 오리의 후회로 게임이 끝난다.
END 넘어선 붉은 꽃(越えた紅い花)
진엔딩. 제목조차 넘어선 붉은 꽃으로 게임 타이틀과 대칭을 이루는, 말 그대로 대놓고 노린 제목.
越えざるは紅い花 가 의미하는 붉은 꽃은 나스라와 루스의 국경에서 피는 이름 없는 꽃이다. 적대 관계인 두 나라의 국경에서 피는 꽃인만큼 넘어설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 두 나라의 단절을 잘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꽃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원래 이 붉은 꽃은 푸른 색이었는데 부사의 유행과 붉게 물들어서 부사의 원흉이다, 불길하다 등의 이유로 사람들이 꺼리지만 실은 이 꽃이 부사를 치료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열쇠였던 것이다.
게임 초반에는 국경도 꽃 그 자체의 불길함에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 나아라 본인조차 그 꽃이 부사의 원흉이 아니라고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에 빠져서 꽃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이 모든 갈등을 풀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드디어 붉은 꽃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진엔딩다운 결말이라 하겠다.
... 뭐, 다른 루트에서도 나아라 없이 어떻게든 치료약 개발에 성공하기도 하고 루스와 화해하기도 하지만.
이 엔딩으로 이르는 과정을 훑어보자면, 토야가 전장으로 출진하고 나아라가 쫓아가는 부분까지는 같으나 이번엔 아직 오리 손에 죽기 전이다. 오리의 칼날이 토야를 내리치려는 찰나 그들 사이에 나타난 나아라가 토야 앞을 가로막고 선다(위 CG). 그 뒤로 나스라에 납치당한 여자들의 토야를 죽이지 말라는 탄원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상황. 설상가상 전장의 형세도 루스 측에 마냥 이롭지만은 않았던 상황인지라 오리는 냉철한 판단으로 칼을 거두며 종전을 선언하기에 이르는데─
그 후 토야는 부사의 치료약 개발에 성공하고 루스와 동맹도 맺는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넘어설 수 있게 된 붉은 꽃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토야 엔딩은 이 세개가 끝인데 어쨌거나 얘네 엔딩은 베스트 엔딩 말고는 하나가 죽든 둘이 죽든, 일단 죽는다.
다른 메인 캐릭터들 엔딩에서는 살려놓고 애를 못살게 굴기도 하는데 얜 그런 거 전혀 없음.
찌질한 진히어로를 만들 수 없다는 제작진의 노림수인가?
참고로 토야의 붉은 머리에 한쪽만 땋은 형태(방향은 다르지만)에 누구씨(♡)가 떠올라서 잠깐이나마 즐거웠다는 건 안 비밀.
자, 다음.
루지, 25세
토야 루트 파생 공략 캐릭터.
루스와 나스라의 혼혈로 뛰어난 약사.
이 게임에서 제일 마음이 편했던 루트랄까. 굳이 말하자면 치유계열?
단순한 치유계라고 생각해서 별 기대 없이 플레이했는데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연애에 빠지는 상황이 토야와 더불어 투탑을 달릴만큼 자연스럽다. 단계를 밟아간다는 느낌이 물씬물씬. 물론 여기도 설정 놀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마냥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만 하지도 않는, 할 땐 할 줄 아는 외유내강형 캐릭터다.
루지는 파생 캐릭터 중 유일하게 루트가 나뉘지 않은 공통 부분에서 만나는 사람으로, 본 루트는 토야 루트에서 한 눈을 팔 때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파생 캐릭터 루트로 들어가면 메인 캐릭터는 더이상 공략이 불가능하니 실수로 잘못 누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거나 저장을 자주 하는 게 좋다.
토야를 계속 공략할 건지, 옆 길로 새서 딴 남자 낚으러 갈 건지를 가르는 선택문.
루지를 만나기 위해서 애쓰는 토야는 살포시 잊어주고 산책이나 하러 가자.
그럼 시녀가 빨래를 널다가 날려먹어서 시트가 나뭇가지에 걸리게 되는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고 주인공다운 오지랖을 발휘해서 나무에 기어올라가는 나아라를 보게 된다.
여주인공이라면 모름지기 오지랖은 기본 탑재요, 민폐는 옵션일지니. 창대한 오지랖의 끝은 민폐일지라.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주인공을 도와주러 나타난 그대는 바로 공략 캐릭터.
두 사람의 연애는 토야와 더불어 부사는 저주가 아닌 병이란 확신을 가지고 치료법 발견을 위해 성으로 연구를 하러 온 루지를 만나 그의 연구를 돕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루지는 어머니가 루스인으로 그쪽 유전이 강했는지 외모가 루스인과 흡사해서 나아라를 비롯하여 납치당한 여자들도 루지에게는 경계심이 좀 느슨하다. 게다가 본인도 어릴 때 남자한테 ANG~? 강간당할 뻔한 사건을 겪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여자들에게 그런 류의 공포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수컷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는 후반가면 이 오빠도 나름 짐승모드). 이렇게 이미 2연타가 들어온 시점에서 쐐기를 박는 결정타가 등장한다. 알고 봤더니 루지 어머니가 나아라 아버지의 여동생, 즉 두 사람은 사촌 남매라는 설정! 우리나라 시점에서 보면 이종이든 고종이든 어쨌든 사촌하고 결혼은 개뿔 연애도 언감생심이지만 이웃한 섬나라는 사촌끼리 결혼이 가능한 관대한 나라다. 열도 게임이니까 우리도 그냥 관대하게 봐주고 넘어가자.
사실 사랑이라는 게 전혀 공통점이 없는 남남끼리 한 눈에 폴인럽하는 상황이 흔하지가 않다.
연애든 우정이든, 제일 흔한 유형이 바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공감을 키워나가는 형태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루지는 나아라에게 여러모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제일 쉬운 이성임이 확실했다.
외모 어드벤티지, 과거의 비밀 공유, 알고보니 같은 핏줄─ 더이상 말이 필요한가?
이 루트는 루지를 공략하는 것 이외에도 볼거리가 제법 쏠쏠한 편인데, 모든 루트에서 샤르한테 이용당했던 남자와 샤르의 후일담이라거나, 3대 3 그룹 교제가 바로 그것이다. 나아라와 샤르와 사라나가 셋이서 칭구칭구하는 것처럼 루지에게도 친한 친구가 둘 있었으니 그 두 사람이 바로 샤르와 사라나의 남자들이란 사실. 얘네들이 노는 걸 보는 것도 꽤 즐겁다. 거기다 조연답지 않게 제법 괜찮은 퀄리티라서 걔네를 공략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애니웨이.
이 두 사람의 루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바로 쏟아져 내리는 빗 속에서 펼쳐지는 애절 모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루지의 명대사는 바로 이 장면에서 나왔다.
……この雨と一緒に、君の中に溶け込んでしまいたい…… 이 비와 함께 네 안으로 녹아들어 버리고 싶어
奥まで染みて、君の全てになりたい…… 깊숙히 스며들어서 너의 모든 것이 되고 싶어……
부사 연구는 잘 안 될 뿐이고, 사랑하는 여자는 이미 유부녀일 뿐이고... 아아아, 이 남자를 어찌하리
그러나 장해가 있을 수록 사랑은 불타오르는 법.
두사람의 감정은 점점 커져만 간다. 결국 토야한테 들통날 때까지.
물론 루지 루트에서는 토야는 그냥 쩌리... 가 아니라, 계약 결혼의 선을 넘지 않은 상태이므로 관대한 남자다.
토야를 공략한 뒤에 루지를 한 거라서 알 수 있었던 거지만, 나아라와 루지가 잘 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준 건 결국 토야이기 때문.
글로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지루하니까(지금도 좀...) 게임에서 직접 확인해봅시다.
어쨌거나 여기서도 나아라가 자신이 부사가 낫게 된 경위를 떠올리고(물론 과거의 추억은 쏙 빼놓고 꽃을 먹었다는 부분만기억해낸다) 부사 치료약 개발 및 루스와 동맹이 잘 풀려나가서 드디어 마지막 선택의 기로가 다가온다.
파생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엔딩이 베스트와 배드 두개 뿐이고, 선택지도 마지막 하나만 삐끗해주면 되기 때문에 공략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유일한(세 명밖에 없어서 유일하다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예외는 스렌 루트 파생 캐릭터인 나란뿐이다.
END 절망이라는 이름의 어둠(絶望という名の暗闇)
CG 없는 배드 엔딩.
마지막 장면에서 도망치자는 루지를 거절하면 나아라는 그대로 토야의 비로서 살아간다. 당연히 왕비의 의무인 후계자를 낳기 위해서 토야와도 실질적인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그 결과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 중 빈혈을 일으킨 나아라를 위해 토야가 약사를 부르러 갔는데 난데없이 루지가 등장(두둥).
그러나 예전에 나아라가 사랑했던 시절의 루지는 더이상 없었다.
루지는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 나아라에게 이번에는 진짜로 자기를 마지막 남자로 만들어 주겠노라며 페이드 아웃.
END 끝나지 않는 연구(終わりなき研究)
CG가... 이게 다가 아닌데... 참 좋은데... 어떻게 올릴 방법이 없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루트에서는 의심쟁이&겁쟁이인 토야의 관대한 모습을 한번 더 볼 수 있는 엔딩.
루지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치고 싶지만 후폭풍이 두려워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나아라.
그런 그들의 앞에 토야가 나타나서 뒷 일은 걱정하지말고 떠날 수 있게 등을 떠밀어준다.
시간이 흘러(현실에서는 스킵되지 않는 빌어먹을 엔딩 스크롤이 흘러-_-) 지도에도 실리지 않을만큼 작은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은 어느날 사라나의 편지를 받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과 샤르도 아이를 가졌다는 내용이 실린 편지를 본 루지는 이미 선수를 빼앗긴 건 어쩔 수 없으니 수로 승부하자며(...) 사이좋게 애정을 확인하면서 끝.
자, 이제 처음 루트가 나뉘던 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두번째 선택문을 고르자.
아이가 신경 쓰였다──── 스렌/나란 루트
스렌, 26세
메인 공략 캐릭터.
나스라의 군사 사령관.
본격 스렌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서 일단 한번 외치고 갑시다.
사랑해요 스렌☆승리의 스렌
사실은 첫인상이 그다지 좋은 남자는 아니지만(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패대기치고 싶을 정도로 개싸가지에 성차별의 주범이며 빌어먹을 강간마새끼지만), 매력 하나는 아주 뚝뚝 흘러넘치는 상남자다. 괄호 안에 조심스럽지 않게 나열한 수식어들이 붙는 남자한테 왠 매력이냐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도 저 수식어를 뗄 마음은 1g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 남자한테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있다.
올 클리어를 하고 나서 스렌을 돌이켜보니 애정은 깊어도 속마음은 그다지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떠오른다.
그와의 첫만남은 나아라가 나스라로 잡혀오기 전에 쓰러트렸던 병사의 고자질로 스렌이 나아라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거칠어 보이는 외관(이라고 프로필에 써있지만 거칠기는 커녕 귀요미아님?!)에 비해 머리 회전도 겁나 빠른 이 남자는 한 눈에 나아라의 진가를 확인하고 넌 이제 내 여자, 도장을 꽉 찍으려는 찰나에
토야의 적절한 개입으로 중단된다.
당연히 이 루트에서도 샤르는 나아라를 위해 도망치려고 결심 및 실행하는데 다른 루트에서는 일반 병사가 잡는 것과 달리 스렌 루트에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샤르를 잡는다. 물론 거기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스렌의 꿍꿍이가 있었다. 나아라를 얼마 안 봤음에도 그녀가 친구를 대신해서 벌을 받겠노라 나설 거라는 사실을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스렌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렌의 집으로 끌려가면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합의 하에, 그렇지만 강제적인 첫날밤을 치르게 된다.
참고로 나아라가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섹스하는 공략 캐릭터는 스렌이 유일하다
스렌은 개인적으로 공략 캐릭터 중에서 제일 매력적이라 생각은 하는데 스렌의 진가는 본인 루트보다 파생 루트에서 드러나기 때문에(-_-);
정작 스렌 본인 루트에 대해서 뭘 어떻게 쓸지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캐릭터 되시겠다.
어쨌거나, 플레이 초반에는 비록 강X일지언정 문진(...)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모 캐릭터보다는 나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좋든 싫든 몸을 거듭 겹쳐가며 쌓이는 정, 이른바 떡정-_-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
나아라가 스렌한테 품은 감정이 애정이 되는 전환점은 스렌이 부상을 입는 이벤트다.
절벽에서 떨어져 다친 스렌이 애초에 거길 갔었던 이유는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입맛이 없었던 나아라가 그나마 유일하게 잘 먹는 게 그곳에서만 열리는 과일이었기 때문. 그걸 눈치챈 나아라는 스렌이 자신을 깊이 생각해준다는 걸 알게 되고─ 라는 뻔한 스토리인데,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나를 무시하면서 막 대한 남자가 사실은 날 좋아했습니다라고 아는 순간 사랑을 느끼는 건 좀 어떨까나. 적어도 난 공감할 수 없었다. 애초에 스렌한테 절대 느끼는 일은 없을 거라며 단언한 나아라라서 더욱더. 결심하자마자 변심이냐? 라는 느낌. 결코 순애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순애도 아니면서 순애인 척하는 건 왠지 재수가 없어.
애니웨이, 비록 진 히어로는 아니지만 엔딩 수만큼은 모든 캐릭터를 압도하는 위용을 보여준다.
문제는 베스트 빼고는 배드 엔딩의 폭풍이 몰아친다는 건데, 난 배드 엔딩을 좋아하는 여자니까 아무 문제 없긩☆
END 망가진 새(壊れた鳥)
스렌 루트에서 제일 좋아하는 엔딩.
엔딩 자체도 나쁘지 않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스렌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스렌을 올클리어 하기 전에 나란을 공략하려고 하면 뜨는 엔딩으로 게임 내에서 유일한 쓰리썸을 볼 수도.
하지만 이 루트에서 제일 명장면은 쓰리썸이 아니라, 아니 쓰리썸도 볼 만하지만... 아니아니아니.. 어쨌든
바로 이「날 사랑한다고 말해」라는 스렌의 대사(이 한마디에 격침. 목소리 끝내줌)와 나아라의 사랑을 손에 넣지 못해서 망가진 스렌이다. 구관조처럼 시키는 말을 아무 감정 없이 반복하는 나아라를 빗댄 제목이지만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시키는 스렌도 어딘가 고장난 건 마찬가지.
멋진 남자가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이란 어쩜 이리 보기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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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해 」
굳게 닫힌 방 안, 오늘도 스렌은 명령한다.
명령에 응하지 않는 한 내 몸은 해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텅 빈 머리와 마음으로 의미가 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 …… 사랑해, 스렌 」
「 거짓말 하지 마! 넌 언제나 늘 그렇게 거짓말만 해! 」
자기가 말하도록 시킨 주제에 스렌은 나를 매도하며 침대로 밀쳤다.
…… 항상 있는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저주의 의식── 광기라는 이름의 애무에 익숙해져 버린 뒤로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걸까.
뭐, 새장 속의 새가 된 내게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지나치게 닳아서 해어진 나에겐 이미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았다.
나란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것조차도 지금의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 내가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건, 네가 날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
그렇다면 그때── 최초에 거짓 사랑을 입에 담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변했던 걸까.
생각했지만 다시 곧바로 사고의 끈을 놓았다.
어차피 생각해봤자 현재의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스렌은 믿지 않을 테니까.
「 어째서 넌…… ! 」
내 가슴에 칼 끝을 겨누며 스렌이 신음한다.
하지만 이것도 늘 있는 행동이라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스렌을 볼 때마다 「차라리 이대로 찔러주면 좋을텐데」라고 멍한 머리로 생각한다.
「 나아라…… 나아라…… ! 」
검을 바닥에 떨구고 아플 정도로 나를 꽉 껴안는다.
떨리는 목소리가 너무나 애절하게 들려서 마치 「사랑해 줘」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 말해 줘…… 」
「 …… 사랑해, 스렌 」
…… 망가진 새는 의미 없는 말을 계속해서 지저귄다.
- END -
END 죄인(罪人)
나란의 어택을 물리치고 스렌을 계속 공략하다보면 사라나가 찾아와서 요즘 샤르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을 보러 간 나아라는 샤르를 만나는데 그때 아무 의심 없이 샤르를 따라가면 불의의 기습을 당해 기절을 하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스라와 루스의 국경. 나아라만이라도 루스로 돌려보내고 싶었던 샤르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루스의 첩자를 나스라 국내로 끌여들였던 것이다. 그 뒤 나스라에 남겨진 다른 여자들은 강제적으로 나스라의 남자들에게 주어진데다 스렌은 나아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격분해서 루스로 침공하자는 진언까지 하고 있다고.
엔딩 타이틀인 죄인은, 나아라가 자신으로 인해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리라는 걸 저주하면서 하는 말에 기인한다.
───이 몸은 죄인보다도 죄가 깊다는.
END 가슴 속에 간직한 고백(秘めた告白)
굳이 따지자면 죄인 엔딩의 후일담 같은 느낌.
샤르를 만났을 때 사라나가 한 말을 떠올리며 따라가면 그 뒤를 나란이 쫓아온다. 조용히 나아라를 루스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샤르는 나란을 칼로 찌르게 되고, 나아라는 절규하며 자신은 루스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대답한다. 거기에 충격을 받은 샤르는 나아라가 루스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 따윈 필요없다며 자신의 목을 스스로 베어 자살.
그 뒤 첩자의 손을 잡느냐 안 잡느냐에 따라 엔딩이 나뉘는데, 여기서는 일단 첩자의 손을 잡고 루스로 돌아가자.
엔딩은 이 선택으로부터 일년도 더 지난 뒤의 이야기.
당연히 여기서도 분노 게이지가 만땅인 스렌 덕분에 루스와 나스라는 전면전을 치르게 되고, 결과는 국력의 차이에서 밀린 루스의 패배.
무너져가는 성에 홀로 남은 나아라를 스렌이 찾아와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 ── 그런가. 그 선택에서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구나)
성을 삼킨 불길은 바야흐로 옥좌가 있는 장소까지 혀를 널름거리고 있었다.
새빨간 빛에 손을 들어 비춰보며 지난날의 손바닥을 떠올린다.
친구와 나를 연모해준 소년의 피로 피투성이가 되었던,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을.
「 결국, 어딜 가더라도 난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
그 날── 손에 이끌려 탈출한 다음, 루스와 나스라 간에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규모는 십수 년 전의 전쟁에도 견딘 대륙 전 국토를 뒤흔들만큼 격렬했다.
양국의 힘은 처음엔 서로 버티며 대항하고 있었지만, 수개월쯤 지날 무렵에는 명백하게 열세로 변했다.
흐름을 바꾸려 분투했던 루스의 왕 오리는 무리한 작전으로 나선 결과……
( …… 스렌, 설마 나의 의붓 오빠를 죽이는 게 당신이 될 줄은 몰랐어.
뭐, 그래도…… 직책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가 )
슬픔이란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나고 말았다.
한탄할 새도 없이 새로운 대장으로 추대되어 버렸기 때문에 동요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나날이 전화 속에서 숯으로 화하고 거칠게 메마른,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있을 뿐.
하지만 패전의 장수라는 건 오히려 구원일지도 모른다.
이번에야말로 혼자 살아남지 않고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느끼는 나 자신이 이상해서 입가가 조소로 일그러졌다.
그때, 석조 복도를 걷는 당당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런 함락당한 성에 대체 누가,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한번 그렇게 생각한 뒤에 훗하고 웃는다.
생각할 것까지도 없이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 …… 여어, 신부님 」
「 당신이라면 올 줄 알았어 」
「 기특하군. 남편의 마중을 기다렸나? 」
「 패전한 장수로서의 직감이야 」
그 후로는 입을 다물고, 피차 꼼짝하지 않고 선 채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윽고 기묘한 침묵은 무언가가 성대하게 무너지는 소리에 깨졌다.
필시 성벽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나는 창 밖을 보고 가벼운 말투로 제안했다.
「 슬슬 나가는 편이 좋겠어. 머지않아 여기도 부서질 테니까 」
「 아아, 너하고 함께 말이지 」
「 난 여기서 안 움직여. 모두의 마음을 품고, 여기서 영원히 잠들 거야 」
바람이 불어와 불티가 흩날린다.
붉은 바람에 군복의 옷자락이 펄럭이는 스렌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아, 최악이며 최고의 기분이다.
이런 때인데도 나는 의붓 오빠를 죽인 원수, 그리고 남편이기도 했던 남자를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니, 마지막이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
「 …… 내게 와라, 나아라. 다른 녀석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널 지키겠어. 절대 나쁘게는 안 해 」
「 그래서, 다시 당신의 부인으로 들어앉으라는 거야?
후후,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
어디까지 「아내」한테 무른 것인가.
정말이지 기가 막혀서, 기뻐서 웃어버리고 만다.
「 …… 안 되겠네, 소중한 군복이 너덜너덜하잖아 」
격렬한 전투 탓에 칠흑의 군복은 일부가 찢어져서 상완 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틈새로 엿보이는 피부에 새겨진 무늬가, 부부였던 무렵에 둘이서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 …… 그 문신 」
말하면서 찢어진 옷의 틈새를 가리킨다.
그 다음 보랏빛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새겨진 무늬에 빗대어──
「 …… 좋아해 」
「 !? 나아라!!
나아라! 나아라──!! 」
소리쳐 불러도 가슴을 꿰뚫은 검의 압박으로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전혀 괴롭지가 않아서, 껴안아 준 팔에 오히려 편안함조차 느꼈다.
입술을 적시는 짭짤한 물방울을…… 다정하고 씁쓸한 눈물의 맛을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인식한다.
「 읏…… 난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게 아니야.
그저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
( 알고 있어……. 당신, 그런 남자인걸……. 언제나 너무 직선적일 정도로 올곧아서…… )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눈으로 웃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나아라…… 」
한 시대, 한 사랑의 최후.
세계를 비추는 불길 속에서 전해지지 않은 말이 타올라 사라진다……
-END-
END 붉은 바다에서(赤い海で)
나란과 샤르가 죽고 첩자의 손을 잡지 않은 채 나스라에 남으면 스렌은 루스와의 동맹을 위해 직접 대사로 나서고 나아라 역시 따라간다.
적지 한 가운데서 당당하게 동맹을 제안하는 스렌을 앞에 두고 나아라가 어떤 행동을 취할 지에 따라 엔딩이 갈라진다.
스렌을 지키겠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오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스렌을 검으로 찌르고 바닥에는 쓰러진 스렌의 붉은 피가 번진다.
END 사랑 싸움(恋しき戦い)
스렌 루트 베스트 엔딩.
마지막 선택지에서 스렌을 믿는다를 고르면 루스는 동맹을 받아들이는 대신 나아라를 루스에 두고 가라는 조건을 내건다.
국경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
그리고 3년 뒤.
나스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렌이 돌아와서 해피엔딩, 해피엔딩.
왜 이렇게 짧냐고요?
음, 어쩔 수 없음. 베스트 엔딩 재미없는걸 -ㅂ-
나란, 18세
스렌 루트 파생 공략 캐릭터.
늘 스렌을 형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닌다.
실제로 피가 이어진 형제가 아니라 전장에서 스렌이 구해준 뒤 거둔 모양.
참고로 나아라하고 동갑.
그리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성우가 내 취향(의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
위와 같은 이유로 등장하자마자 사실은 스렌이 아니라 나란을 먼저 공략하려고 했었다.
근데 하다 보니 나란은 (진히어로도 아닌 주제에) 유일하게 회차 제한이 있는 캐릭터라 스렌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나란 공략이고 나발이고 스렌 배드 엔딩밖에 안 뜬다는 불편한 진실.
애초에 모든 캐릭터가 오리한테서 나아라를 빼앗는 NTR을 연출하지만, 나란 루트는 NTR of NTR이다. 다른 파생 캐릭터가 본인 루트에 들어가야 제대로 만날 수 있는데 반해 나란은 스렌 루트 초기부터 내내 등장하면서 나아라의 마음을 흔들어대고, 이미 육체적인 관계로도 이어진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 들기에 그 시점에서 스렌과 나란의 공존은 이미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렌이냐 나란이냐, 고민하게 만드는 양자택일.
덕분에 스렌 루트를 하면 나란이 눈에 밟히고, 나란 루트를 하면 스렌을 목놓아 부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무슨 소리냐고?
한 쪽을 고르면 다른 한 쪽은 무조건 죽는 궁극의 선택이라 이 말씀.
스렌을 고르면 나란이 떠나가고
나란을 고르면 스렌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다.
아, 나를 괴롭히는 형제여
어쨌거나 나란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아라한테 한눈에 반했는데 그녀는 이미 자신이 친형처럼 따르는 사람의 아내.
즉, 형수님인 것이다.
난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움직일 수 없었어
숨을 쉴 수조차 없었어
왜 너를 이제야 만난 건지
하필 내 동생형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된 널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나
아는 사람은 아는 노래의 가사. 단어 하나만 바꾸면 정말 엄청난 싱크로다...(...)
이 루트를 타게 되면 남편 놔두고 바람핀다는 느낌이 확 나는데(루지의 경우는 토야하고 선을 넘지 않아서 그저 계약혼이라는 느낌밖에 없고 노르 이 개X끼는 언급할 가치도 없음) 스렌 입장에서 볼 때 진짜 아옳 ㅋㅋㅋㅋㅋ
이것들을 죽여 살려 하는 느낌이겠지만, 자기 루트도 아닌데 뭘 어쩌리오.
여기서는 스렌도 그저 퇴갤하는 운명을 지닌 조연에 불과한 것을.
절벽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돌아온 스렌을 보러 가려고 할 때 나란이 말리는대로 참으면 이렇게.
그간 나란이 얼마나 절절한 심정으로 나아라를 짝사랑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폭발하는 장면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여자 냄새만 맡아도 벌떡할 나이에 한 지붕 아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형뻘되는 사람하고 잉야잉야하고 있는 걸 손가락 깨물며 참을 수 밖에 없었던 나란의 심정을 생각하면 이 누나는 그저 눙무리......
나아라는 자기가 강제로 결혼해서 원치 않는 생활을 강요당하는 걸 참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나란이 있어줬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고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느낀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원래 생활로 돌아가자고는 하지만, 생각해보자. 18세, 한창 혈기가 왕성한 시기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 과연 태연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손만 스쳐도 아주 난리가 난다.
머리 회전도, 감도 좋은 스렌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기서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라며 다그치는 스렌. 그러나 나아라는 이미 스렌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그 감정이 연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깨닫고 그저 스렌에게 사과만 할 뿐이다.
스렌이 진짜 대인배임을, 오히려 자기 루트에서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바로 여기서 나아라의 마음을 인정해주는 장면이다.
「 네 성격으로 봐서, 사과를 받는다는 얘기는…… 더이상 나한테 희망은 없겠군 」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이혼은 안 해주지만-ㅅ- 어쨌든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스렌과 나아라는 부부인 동시에 「맹우」가 되었다─── 는 이거 나란 루튼데 난 왜 스렌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영...(...)
각설하고.
나아라와 함께 있을 구실을 만들고 싶어서 스렌 전용 채소를 숨겨가며(;) 둘이 같이 장을 보러 나온 나란.
스렌 루트에선 여기서 샤르가 나타나지만 나란 루트에서는 그런 거 없다.
샤르를 눈치 챈 나란이 잽싸게 나아라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 이렇게 샤르 비중은 공기가 되어가고... 가 아니라.
먼지가 붙었다며 은근슬쩍 손대는 나란(18세)군. 저 표정을 보라. 너무 귀여워서 잠시 정줄을 놓을 뻔 했긔.
이들의 닭살 행각을 지켜보던 상인이 두 사람을 부부라고 오해해서 불타는 상인혼을 발휘하는 바람에 나란은 나아라에게 붉은 보석이 붙은 반지를 사주기도 한다.
부부라고 오해받은 이 공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도 이내 농담이라고 말을 바꾸며 웃어주는 나란.
하지만 이들의 겉보기만이라도 평안한 생활은 당연히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가면 게임이 안 끝나니까. (-_-);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파생 캐릭터 중에서도 특히 나란은 스토리가 짧은 느낌이라(스렌하고 공통으로 출연하는 부분을 감안하면 그렇게 짧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가 길었으면, 했었다.
어쨌거나 상황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파른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바퀴처럼 급변한다.
앞서 스렌 루트에서 나아라를 루스로 빼돌리던 샤르가 한 건 해주셨기 때문.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나란의 적절한 방해탓에 나아라를 만나지 못한 샤르는 본인이 직접 루스로 탈출해서 나스라 침공을 진언한 것이다.
루스에 맞서 나스라도 전군을 일으켜 출진하게 되고, 스렌은 나란에게 나아라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지만 나란은 이번에야말로 자기도 출전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자기도 나아라에게 있어서 당당한 남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란을 보며 혼자 생각하는 스렌. 이 이벤트는 스렌의 시점에서 보는 거라 스렌이 얼마나 나란을 생각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굳이 스샷을 두 장이나 찍은 건... 나란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스렌의 표정 때문에 스샷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왜 나란 루트에서 스렌한테 폭주하냐고 묻지 마시라. 이 루트 하다보면 스렌 완전 멋진 남자임乃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은 구해줬었던 그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애타게 우러르는 마음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고지식하게 쫓아온다.
그 눈에 나야말로 구원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건 언제였던가…….
한눈도 팔지 않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달려나갔던 반생 중에는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점의 흐림도 없이 동경하는 눈길을 등에 느낄 때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이 솟았다.
다리를 움직일 원동력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도움을 받고 있었던 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 그런 널 여기서 잃어버릴 수는 없다고 )
이번 전쟁은 필시 저번보다 혹독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런 전황으로 끌고 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에 루스가 움직였다.
「 …… 넌 여기에 남아라. 남아서 나한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그 녀석을 지켜줬으면 해 」
「 무…… 슨 소릴 하는 거야, 형!?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
「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잖아 」
「 그래도…… 형의 입에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어.
형이 없어지면 누나만이 아니라, 나도 살아갈 수 없어 」
「 하하, 넌 언제까지 어린애일 거냐? 슬슬 나한테서 졸업하라고 」
「 싫어. 거기다 나, 형한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격 따윈…… 」
「 내가 제일 믿고 있는 건 너야. 가치의 유무는 내가 정해 」
「 …… 」
나란의 얼굴이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일그러진다.
그걸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벽에 기대어 놓았던 검을 손에 쥐었다.
출진 준비를 하며 예측해본다.
…… 나란의 성격으로 봐서, 슬슬 죄악감에 견딜 수 없어질 무렵일 것이다.
「 내가…… 」
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지 않고 끝낼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나란이다.
그런 서투른 면에 쓴웃음이 떠오를 것 같다.
「 내가…… 형을 배신하고 있다고 해도? 」
「 헤에, 어떤 식으로? 어차피 너니까 몰래 술을 마셨다던가, 그런…… 」
「 형이 절벽에서 떨어졌던 날 밤…… 누나는 형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었어. 그렇지만 내가 말렸지……
실상을…… 형이 누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 누나는 절대 형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난 거짓말을 내뱉았어 」
「 …… 」
「 그게 다가 아냐! 그 외에도, 누나랑 같이 나가고 싶어서 형을 위한 채소를 숨기거나…… ! 」
「 알고 있어 」
「 에…… 」
「 몇 년을 같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생각 같은 건 금방 알아 」
「 그렇담 어째서…… 」
이유를 물어보면 나도 곤란하다.
아내를 빼앗는 남자가 있으면 모조리 죽여주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지 나도 물러진 것이다.
나란이 상대가 되면 미워할 수가 없다.
일전에 나아라한테 「남자로서 볼 수 없다」고 선언당한 일로 단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넌 좋겠구나…… )
나란이 나를 동경하는 것처럼, 나도 나란을 부럽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란은 언제든지 솔직해서 마음을 그대로 부딪칠 수 있다.
( 알겠냐, 나란. 네 쪽이 꽤 용감한 거라고 )
본심을 말하면 「사랑한다」고 고백해서 거절당하는 게 싫었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무서웠다.
그러니까 「아내」라는 입장을 강요하는 걸로밖에 마주볼 수 없었다.
( 그런 한심한 남편이라면 차이는 게 당연하지 )
나란이라면 분명 내게는 없는 강인함으로 그 녀석을 지켜주리라.
「 …… 그 녀석은, 네 앞이라면 웃지. 멀리서라도 그걸 보는 건…… 제법 즐거웠다.
난 말이야, 그 광경이 맘에 들었어. 그게 망가지는 건 부아가 치밀어 」
「 형…… 」
「 게다가 그 녀석도 너를…… 」
「 아니야! 누나는 형을 사랑하고 있어! 」
( 진짜 둔하구나, 너. 어째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눈치 못 채는 거냐 )
「 누나를 위해서도 나한텐 형을 지킬 의무가 있어. 형이 위험한 곳에 갈 거라면 내가 방패가 될게 」
「 안 」
「 안 된다고 해도, 따라갈 거니까 」
「 하아…… 」
만일을 생각해서 한 말이 역효과였던 것 같다.
나란이 단정을 짓고 물러서지 않을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 그러고 보니, 나한테 『제자로 받아줘』라며 쳐들어왔을 때도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던가…… )
몇 번을 거절해도 따라왔기 때문에 마침내 끈기에 져서 받아들였지만……
「 하하. 뭐랄까, 넌 사실 최강이구나 」
「 ? 」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남동생이 된 존재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 그럼…… 날 따라 와라 」
「 ! 아아, 절대로 내가 형을 지킬게! 」
「 하하, 기대하지 」
…… 그렇게, 이 깨끗한 눈동자가 죽음으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기대했다.
멀리서 방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 얄팍한 「기대」가 무너져버리는 소리다.
「 큭…… ! 」
출발하고서 이윽고 나와 토야의 군대는 양 쪽으로 나뉘었다.
왕도를 향한 대로를 지키는 국왕군과 뒷문으로 통하는 산길을 지키는 나의 군대.
모든 요소에 군사를 배치하여 방비는 완벽…… 했을 터였다.
「 철수! 철수다 ─ ! 」
목소리를 높여 외쳐봤자, 이 목소리를 듣고 있을 부하가 과연 몇 명이나 남았을까.
대부분은 루스군의 생각지도 못한 급습으로 목숨이 끊어졌다.
( 이쪽 지리를 너무 잘 알아…… )
적은 여기의 지리는커녕, 어떤 요새가 있고 어느 정도의 인원을 배치할 수 있는지 등, 자세한 경위까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 …… 내가 그 여자를 얕봤군 )
머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샤르」인가 하는 여자였다.
나아라의 친구이기도 한 그 여자는 상당히 전부터 여러 명의 상인, 귀족을 속여 넘겨서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계집 혼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따윈 뻔했다.
──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탈주를 확신했을 때도 지나치게 추격하지 않았다.
( 그 샤른가 하는 여자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거물을 떨어트렸는지도 모르겠는데 )
「 하, 정말이지 여자라는 건 무섭구만 」
「 죽어라 ─── !! 」
「 …… 이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덤벼드는 적을 베어버리고 퇴로를 연다.
우리에게 남겨진 길은 이젠 토야군과 합류하는 것 뿐이었다.
「 핫, 하아, 하아…… 」
「 읏…… 」
( 설마 이쪽에 주력을 둘 줄이야 )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추격당해 쓰러져간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 있는 건 나란뿐이었다.
그 나란도 몸의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고 거친 호흡을 되풀이하고 있다.
「 …… 」
산길의 출구는 멀다.
「 형! 여긴 내가 막을테니까 형은 먼저 가줘 」
「 바보냐. 이런데 널 두고 갈 리가 없잖아. 너야말로 먼저… 」
「 부탁이니까! …… 부탁이니까, 지킬 수 있게 해줘, 형. 누나를 위해서도 형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
「 …… 」
「 나 같은 걸론…… 형을 대신할 수 없어 」
( 그거야 그렇겠지 )
여하튼 나는 그 녀석의 「친구」니까.
「사랑하는 사람」인 나란으로서는 대신할 수 없다.
「 …… 」
「 형! 」
「 …… 알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어깨를 껴안아 몸을 끌어당긴다.
팔 안으로 느껴지는 체구는 남자 그 자체로, 지난날의 소년스러움은 사라져 있었다.
( 하하, 정말…… 커다래졌구나 )
만났을 무렵엔 그렇게나 작았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건장하게 성장한 어깨를 두드렸다.
「 형…… ? 」
「 나의 마지막 이기심이다 」
「 읏!? 혀…… 엉 …… ? 」
의식을 잃은 몸을 붙잡아 안고서 이미 들리지 않을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본심을.
「 …… 네가 죽으면 그 녀석이 외톨이가 되잖냐.
난 그 녀석한테 아픔밖에 줄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돌아가고, 좋아하는 남자가 죽는다고?
녀석의 기분을 생각하면 돌아가야 할 건…… 내가 아니야 」
말을 끌어 당겨서 탈력한 몸을 태운다.
전사가 되었을 때부터 함께 전장을 달려온 파트너인 흑마는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콧소리를 한 번 냈다.
「 아아, 그러고 보니…… 」
머리 부분에 감은 천을 쥐었을 때, 신기하게도 마음이 밝아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것으로 몸을 고정해준다.
「 가라. 이 녀석을 토야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줘 」
신호를 보내자 흑마는 명령한 방향을 그대로 달려갔다.
그와 엇갈려서 가까이 다가오는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무심코 미소를 띄운다.
「 이 몸이야말로 나스라 군사 사령관, 스렌! 공훈을 가지고 싶은 놈은 덤벼라! 」
하늘 높이 검을 치켜올린 순간, 그러고 보니라고 떠올린다.
딱 한 가지 더, 말하는 걸 잊어버린 게 있었다.
「 나아라…… 」
이 이름을 부를 때 언제나 늘 가슴 속에 있던 마음──
「 …… 사랑한다 」
─────────────────────
괜히 스렌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스렌, 자기 루트보다 남의 루트에서 빛나는 이 민폐쟁이 같으니라고.
아 물론 나란도 귀엽지만 올클리어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스렌 빠돌이였기 때문에 걘 그냥 귀여운데서 끝.
어쨌거나 앞에서 해온 선택지에 따라서 일단 엔딩이 갈린다.
땅파고 있는 여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니 이 뇽을 확 그냥... 싶지만, 스렌과 나란을 생각하며 참자...
END 부서진 붉은 보석(壊れた紅玉)
스렌도 나란도 둘 다 잃는 최악의 루트.
스렌이 몸을 내던진 보람도 없이 나란도 죽는 꿈도 희망도 없는 루트 되시겠다.
END 그 날까지(その日まで)
나란을 공략하는 선택지를 맞게 고르면 스렌은 죽고 나란은 정신을 잃은 채 돌아오게 된다.
그 뒤 스렌을 잃어버린 절망에서 빠져나온 나란은 나아라에게 결혼을 제안하고 두번째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혼이라는 이름의 동맹일 뿐인 계약 결혼이다.
나란이 나아라에게 품은 감정은 이미 연애 감정이 아니며 두 사람의 꿈이 이뤄질 밝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의 노말 엔딩.
END 머나먼 미래(遙かなる未来)
바로 위 엔딩에서 뒷 이야기가 더 붙는 베스트 엔딩.
여전히 두 사람은 겉모양 뿐인 부부지만, 나아라는 각종 연애 상담(...)을, 나란은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며 7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인고의 세월 끝에...
「 ── 나아라. 나의 진짜 아내가 되어줘 」
군사 사령관이 되어서 나아라에게 고백하는 나란(그리고 스렌 코스프레. 이러니까 넌 스렌 빠돌이야).
나스라에서는 결혼해도 아이를 한 번 낳게 되면 그 여자는 바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규칙이 있다.
유일한 예외는 귀족들뿐인데, 군사 사령관은 후계자가 생기면 귀족 작위를 하사받기 때문에 그 법에서 제외가 된다나.
그걸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손에 넣은 지위인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드디어 7년 만에 첫 거사를 치르면서 막을 내린다.
이제 마지막 루트로 가자.
안쪽의 검은 천막이 신경 쓰였다──── 노르/세후 루트
노르, 28세
메인 공략 캐릭터.
나스라의 정무 보좌관.
원래 어느 나라의 왕자였다는데 당시에 얼마나 놀아났는지 육욕 같은 속물적인 것에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 녀석은 십장생 개나리 같은 새X로 나한테 가장 설득력이 없는 캐릭터 되시겠다. 토야가 진 히어로라서 할까 말까 하는 와중에 뙇 등장하는 노르를 보고 아 시밤 제일 먼저 해야될 놈 발견! 이라고 생각했다.
초미형에 하라구로라니, 이건 안 해볼 수가 없잖아?
해달라고 도발하는 거지?
이렇게 이 게임에서 첫 공략 타자는 노르로 낙점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던 노르 루트의 소감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플레이 초반 : 역시 하라구로 미남이니 S속성 정도는 기본 탑재해야지
플레이 중반 : 아니 시발 주인공년이 왤케 넙죽넙죽 넘어가는 거야. 오프닝 패기 어디갔심
플레이 후반 : 빨리 끝나라. 다음 캐릭터 정했다.
끝.
리뷰 서두에 이 게임에서 여주인공이 공략 캐릭터에게 사랑을 느끼는 과정이 스톡홀름 신드롬을 떠올리게 한다고 썼는데, 얘 루트가 진짜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짝이다. 스렌의 강제성 따위 노르에 비하면 양반이다(-_-)
일단 노르 루트는 기본적으로 나아라가 초반에 겁나 당하다가(19금적 의미도 있지만 주로 정신적으로) 그녀의 올곧은 마음과 배짱, 거기에 따라온 결과를 보고 노르가 감화된다는 게 주 내용인데, 나아라 입장에서 보면 이 새끼는 졸라 원망하고 저주해서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 이미지로 시작한 주제에 얼마 가지도 않아서 아잉아흥아항 ... 아놔...
대체 이 새끼가 무슨 수작을 쳐했길래 나한테 욕을 쳐듣고 있는 지 궁금한 사람은 직접 해보는 편을 추천하지만 일단은 적어둔다.
원래 노르는 여자를 취할 마음이 없었고, 오히려 토야와 나아라가 결혼하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비록 적국이지만 나아라는 루스 왕의 여동생. 정치적으로 이용 가치가 충분했기 때문. 그러나 샤르의 도망 사건 때문에 나아라가 그날 밤 안에 결혼을 해야만 했고 노르는 이번 기회에 토야와 나아라를 어떻게 엮어보려고 했었지만─ 노르의 손에 마냥 놀아나지는 않겠다고 작정한 나아라는 자신의 결혼 상대로 노르를 지목한다.
어쩔 수 없이 나아라를 데리고 돌아온 노르가 제일 먼저 시킨 짓은 앞에서 여러번 언급했던 바로 그 문제의문진...
초야 의식을 하긴 해야겠는데 자기는 육욕 같은데 흥미가 없어서 너 따윈 안을 마음이 없고, 어차피 의식의 감시관도 마침 자신이니까 너 혼자서 문진으로 처녀막을 찢으랍시는 충공깽 아, 물론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나아라의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고 일단 직전에서 멈추기는 했다(일단 연애 게임이니까 더 나아가면 좀 곤란하다).
나아라 입장에서 노르는 자길 납치하고(직접 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한통속이니까), 이용해먹으려 한데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적 수치심까지 끌어다 안겨준 천하의 개썅놈 이미지로 시작했다는 얘기다. 루트를 진행하다보면 스킨쉽 진도도 나가는 데 그거까지 변태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가~끔 듣기 좋은 말 좀 해주고, 신경 써줬다는 티 좀 낸다고 흐물흐물 녹아서 바로 넘어가는 쉬운 여자 루트.
거기다 사실은 이 녀석도 처음부터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읊어대니 이 무슨 삼류 드라마냐.
차라리 나아라가 끝까지 안 넘어와서 얘가 좀 초조해한다던가(니놈만 아는 질투하지말고) 소소한 완급을 주는 이벤트라도 좀 있었다면.
노르 루트는 인간이 이 모양이다보니 공략 내내 빵터지는 개그는 고사하고 피식거릴 미소를 지을 기회 한 번 오지 않는다.
상상해보라. 이게 과연 연애의 ㅇ이나 꺼낼 수 있는 스토린지.
만약 내가 나아라였다면 이 세상 끝나는 날이 와도 이 새끼랑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태양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니웨이.
다 떠나서 내가 얘를 좋아할 수 없는 최대의 이유는, 나 역시 괴롭힘 당하는 것보다는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쪽이기 때문에!
같은 하늘 아래 같은 S는 양립할 수 없는 법인 것이다!!... 가 아니라 주인공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나만 괴롭힘 받는 건 참기 힘들었다 ㄱ-
그런 이유로 내가 노르 루트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뜬금없이 나타나서 불씨를 싸지르고 떠난 스렌이었음
키스 마크 위에 키스 마크라니, 스렌 이 매력 덩어리♥ 그래서 두번째 타자가 스렌이었다는 얘기.
그 외에 첨언을 좀 하자면─ 노르 루트에서는 조연들의 이야기가 거의 안 나오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공략할만 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장점 :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부작용 : 게임하기 싫어질 가능성이 있음). 얘만 공략했을 때는 샤르는 그냥 나아라가 공략 캐릭터들한테 억지로 시집가게 만드는 역할로만 끝나는 줄 알았다. 사라나는 한 술 더 떠서 비중이 아예 공기.
욕 쓰다가 정작 스토리를 깜빡했는데, 초야의 문진 사건 직후, 노르는 나아라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토야가 개정하고 싶어하는 법에 반대하는 대신 중 필두인 오르테 대신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면 자기도 루스 여자들의 해방을 약속하겠다고.
그렇게 나아라는 매일 같이 오르테 대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의 저택으로 향하고 그러다가 세후랑 눈이 맞... 는 건 다음 공략 캐릭터.
요약하자면 거기 왔다갔다 하면서 스렌도 만나고 깡패도 만나고 비 맞아서 쓰러지고 노르가 자기 과거 얘기 해주고... 한다는 내용.
후, 이만하면 됐다 싶지만 엔딩 설명을 위해서 노르의 과거 이야기도 첨부.
어느 나라의 왕자였던 노르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듣는 천재였고 그 재능을 발휘하고 싶었으나 그의 나라는 맏형부터 중책이 주어지는 체재였다. 그는 7번째 왕자라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던 것. 돈도, 보석도, 여자도─ 모든 게 다 갖춰진 환경이었지만 오로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곳만은 주어지지 않았던 노르는 어느 날 둘째 형하고 내기를 하게 된다. 성인이 될 무렵에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자신의 직무와 교환해주겠다고. 매일 매일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문무 양쪽으로 노력해서 드디어 성과를 낸 그는 약속을 이행하려 형을 찾아갔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상심한 노르는 그때부터 방종한 생활을 일삼다가(이때 육욕에 질린 듯) 여행 중에 해적의 습격을 받고 바다에서 표류하다 우연히 도착한 곳이 나스라였다고 한다. 나스라의 왕은 이 나라를 위해서 노르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청하게 되고 노르는 나스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얘기.
노르 루트 스토리 진짜로 끝.
END 노르(ノール )
다른 사람을 보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가둬놓고 약을 써서 나아라의 모든 것을 노르로만 물들인다는 엔딩.
CG 없음
END 애완 노예(愛玩奴隷)
어쨌거나 여기서도 유폐당해서 노르의 충견이 된다.
CG는 있지만 수위가 조금...
END 붉게 물든 하늘(紅く染まる空)
위의 두 엔딩은 아예 배드 루트로 빠지는 거고, 남는 두 개는 그나마 애정이 싹트는 루트다.
외교를 위해서 노르의 고국과도 연락을 취해서 그곳에서 대사가 오기로 했는데 하필 같은 날 아직 남은 반대파 의원이 찬성하는 방향으로 갈아타겠다고 해서 노르는 만찬회에 참석하고 나아라는 그 의원에게 가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이에 저택이 펑!
이전부터 현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던 군부의 쿠테타로, 평소에는 노르가 그 움직임을 막고 있었으나 최근 나아라와의 계약으로 눈치채지 못한 사이 제거당한 것이다. 군 사령관인 스렌이 솔선해서 움직인 게 아니라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부대장들이 스렌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벌인 일이지만 부하를 버릴 수 없는 스렌으로서는 나서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스렌이 나아라를 차지하는 걸 더는 망설이지 않을 거라며 도망을 진언하는 에스터, 그리고 그런 에스터에게 루스로 돌아가지 않고 아직 나스라에 남은 여자들과 남편의 몸을 되찾겠다는 사명을 완수하겠노라 다짐하는 나아라. 그들이 홍련처럼 타오르는 하늘에 등을 돌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개인적으로 뒷 이야기가 좀 궁금한 엔딩.
그러고 보면 스렌은 다른 루트에도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어서 나아라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집착을 드러내는데, 진 히어로는 토야지만 스렌도 정 히어로쯤은 될지도 모르겠다. 엔딩 수로 보나 비중으로 보나 여러모로 제작진의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
END 내기의 끝(賭けの果て)
노르 루트 베스트 엔딩.
이런 시기에 반대파 의원이 접촉해오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며 노르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나아라는 수상한 남자들을 보게 되고 그걸 에스터와 노르에게 알린다. 그 후 사신과 회담을 통해 긍정적인 대답을 이끌어내며 무사히 만찬회 종료.
각종 CG랑 달콤한 대사 등을 모조리 쑤셔넣은 베스트 엔딩이지만, 난 여전히 석연찮다 이 문진남.
세후, 35세
노르 루트 파생 공략 캐릭터.
토야와 노르의 의견에 대립하는 대신의 아들.
현 위치는 일단 아버지인 대신의 비서라고 되어 있으나 현실은...
글러먹은 아저씨라는 느낌?
파생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메인 캐릭터와 제대로 이혼한 뒤에 재혼하는 인물.
아저씨 캐릭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제일 마지막에 올클리어를 목적으로 플레이했는데 의외로 할만은 하다.
문제는─ 공략 캐릭터인 세후 본인보다 아버지인 오르테 대신이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
난 자기 길을 간다! 는 느낌으로 신념이 확고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세후 루트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는 아저씨의 갱생 스토리라고 할까.
부사로 어머니를 잃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이 싫은 나머지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으며 살아온 세후는 자신이 바라는 걸 위해서라면 어떤 역경이 몰아쳐도 꿋꿋하게 찾아오는 나아라한테 감화되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야지 속성(무려 17세 연상의 위엄을 자랑한다)이라서 그런지 연애의 두근거림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만큼 마음도 편하게 두 사람이 가는 길을 지켜볼 수 있다.
스토리는 별 거 없이, 노르와의 계약 때문에 매일 같이 오르테 대신 집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이후로 몇몇 사건을 거치며 나아라한테 반한 세후와 나아라가 결혼해서 오르테 대신을 설득하는 것까진 성공했으나 아직 반대파 의원들이 많이 남았기에 둘이서 그걸 설득하러 돌아다니는 게 끝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냐 싶겠지만 정말로 이게 다임.
심지어 CG도 6장 뿐인데, 그 중 4장이 H씬이라 마땅히 올릴 것도 없긔.
그렇다고 CG를 안 올리면 섭섭하니까.
END 달에서 온 사자(月からの使者)
의원들을 설득하고 의회에서 아버지인 오르테 대신의 연설만이 남은 상황이었으나 그가 독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세후가 그 책임을 맡게 된다.
긴장으로 떠는 세후의 손을 잡아주면 뜨는 엔딩이다.
나아라만 죽이면 세후가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반대파 의원의 칼을 대신 맞고 달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노라며 죽음.
END 다정한 음색(優しい音色)
세후를 믿으며 몸을 떼면 배드 엔딩의 그 의원은 나아라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후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어 습격을 중지하고 세후는 무사히 연설을 마친 다음 법안 개정을 통과... 시켰던 것 같다. 리뷰를 쓰다말다 쓰다말다 하다보니 기억이...
어쨌거나 그 뒤로 몇 년이 지나서 애도 낳고 잘 사는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CG는 H씬이므로 생략한다. 파생 캐릭터는 루트 중에 잉야잉야가 한 번 뿐이라서 엔딩이 전부 그짓으로 끝난다(-_-);
이제 모든 공략 캐릭터는 끝났고, 그 외 기타 엔딩을 살펴보자.
토야 루트에서 볼 수 있는 우르 엔딩
END 맹세(誓い)
토야와 결혼한 뒤 나아라를 시중들게 된 하인 우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르는 영원히 비전하의 아군이예요~ 라는 귀여운 미소년 엔딩.
그렇다고 토야를 버리고 둘이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는다(좀 더 크면 어떻게 될까?)
노르 루트에서 볼 수 있는 에스터 엔딩
END 영원히 기다리는 사람(永久の待ち人)
노르(ノール) 엔딩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에스터는 원래 노예였던 걸 노르가 사서 길렀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감정 표현이 없고 주종 관계 이외의 인간 관계가 전무한 그를 감화시킨 마성의 여인, 그 이름은 여주인공이어라.
노르한테 감금당해 사고 일색이 노르로 물드는 게 결코 나아라에게 있어서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한 에스터는 노르를 배신하고 같이 도망을 치게 된다. 약에 침식되어 모든 사람을 노르라고 생각하는 나아라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곁을 지키는 에스터를 마음에 들어한 플레이어가 적지 않을 듯 하다.
END 사라진 대답(消えた答え)
에스터가 데리고 나가려고 할 때 선택지 잘못 고르면 도망치던 와중에 추격자한테 에스터 사망.
공략 캐릭터도 아닌데 배드 엔딩까지 있다니...
──────────────────────────────────────────
이렇게 게임을 올 클리어 한 난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본 게임 최대의 피해자는 모든 공략 캐릭터한테 NTR 당하는 오리라고
NTR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조연들조차 있는 그 흔한 엔딩 하나 없는 불쌍한 캐릭터.
나아라가 무사히 루스로 돌아가서 일이 잘 풀리는 노말 엔딩 하나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잖아?
이 얼마나 불쌍한가... 아니, 그렇다고 오리를 공략하고 싶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 들지만(따라서 이미지도 생략).
어쨌거나 결론은, 한번쯤 해볼 만한 게임이라는 거.
딱히 나쁜 구석도, 그렇다고 확 좋은 구석도 없는 무난무난 무나니스트한 느낌.
앞서 서두에 CG 왜 이따구냐고 깠지만 여주인공인 나아라를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컷도 제법 있다.
최대의 장점은 공략 캐릭터별로 스토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게 당연하다면 참 당연한 건데, 간혹 공통 루트로 게임 플레이 시간 50% 이상을 꽉꽉 채워넣고 개별 스토리가 쥐꼬리만큼 보일랑 말랑해서 한 캐릭 공략하고 나면 스킵 한 방에 대부분 넘어가는 게임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좋은 수준이다.
스토리의 전개나 비중의 차이야 어쩔 수 없고, 특정 캐릭터의 급전개는 이게 뭐야 소리가 절로 나올 때도 있지만.
모든 취향을 완벽하게 맞춰줄 수도, 장점만 있는 게임도 없는 법이다.
본 리뷰를 읽은 사람 중에 혹시나 아직 하지 않은 게임인데 어떤가 싶어서 살펴본 사람이 있다면 직접하고 판단하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