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독 꽃의 쇠사슬 ~환상야화~ 마지마『호중천』
그 보고를 받은 건 한밤중이 다 되어서였다.
──── 공주님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것은 그녀의 오빠보다도 더 빠르게 병원의 내통자에 의해 나한테 전해졌다.
이미 면회 시간이 지난 병원의 복도를 조용히 걷는다.
사부로가 일으킨 사고로 머리를 부딪쳐 한때는 의식이 없었던 그녀가 눈을 뜬 건 여기로 옮겨지고 반나절 정도 지난 뒤였다.
( 다행이다…… 큰일은 아니었나 보군 )
그렇게 가슴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모순된 감정에 불쾌해진다.
나는 그녀를, 그 저택을 모조리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그곳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운전하던 사부로는 죽었다.
그토록 커다란 교통사고에서 사지가 멀쩡하게 생환한 것을 분해하지는 못할지언정 왜 안도 따위를 하고 있는 건가.
어쨌든 나는 공주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그건 본능적인 욕구로, 이때 복수 같은 걸 고집하는 건 잠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래, 나는 이 손으로 그 저택을 멸하고 싶은 것이다.
그 무지몽매한 아편 중독자의 손에 어이없이 섬멸당해버리는 일 따위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내통자의 안내를 따라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틈을 타 병동에 숨어든다.
나는 살며시 공주의 방에 침입했다.
잠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실내는 어둡다.
당연히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는 캄캄한 방 안에서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순간 그걸 눈치챘겠지만 이제 와선 어쩔 수 없다.
확실히 시야에 들어간 것이다.
「 저…… 공주님. 죄송합니다, 이런 시간에…… 」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해봤지만, 그녀는 무반응이다.
이 거리에서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난 이상하게 여기며 침대 옆으로 다가섰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 골절된 팔과 다리가 고정되어 있으며 얼굴이나 손목에 다소의 상처는 보이지만, 그 안색은 정상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 공주님? … 설마, 눈을 뜬 채로 자고 계신 건 아니겠죠 」
얼굴을 들여다봤으나 역시 전혀 무반응.
과연 이상하다.
나의 고동이 불온하게 맥박치기 시작한다.
「 …… 공주님 」
「 읏…… 누구…… ? 」
내가 살며시 손을 대자, 그녀는 이쪽이 놀랄 정도로 몸을 들썩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띠었다.
전신을 움츠리며 몹시 무서워하는 그 반응에 나는 당황했다.
「 누, 누구, 냐니……, 저예요. 마지마입니다. …… 설마, 잊어버리신 겁니까? 」
「 …… 저기…… 누구야…… ? 부탁해, 무슨 말이든 해줘…… 」
( …… 이건…… )
──── 이 사람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걸 확신했을 때, 자신의 귀에서 악마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들었다.
상하이────.
아편과 매춘. 야만스러운 욕망과 음모, 서양과 동양이 뒤섞인 매혹적이며 추악한 마도.
프랑스 조계에 있는 저택으로 돌아오자, 많은 하인이 나와서 맞이했다.
(*조계 : 2차 대전 전에 중국의 개항 도시에 있었던 치외 법권 외국인 거류지)
그 선두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오른 뺨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는 장년의 남자다.
내 얼굴을 보자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쟝요우렌.
전 주인──── 날 상하이로 데려왔던 남자의 대부터 섬기고 있는 충실한 남자.
내가 없는 동안 이 저택 전부를 도맡아서 관리하고 있다.
결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하 중 한 사람이다.
「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
「 약간 귀찮은 일이 한 가지 」
「 …… 알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지 」
「 그 아가씨는? 」
쟝은 내 뒤로 부하가 안고 있는 의식이 없는 여자를 보고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내가 좀처럼 여자 따위를 데려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각별히 기묘하게 보였을 것이다.
과연 눈치가 빠르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 …… 일본에서 주워왔어 」
「 일본의 이에치(野鶏/イエチー)입니까 」
쟝이 내뱉은 말에 무심코 실소를 흘린다.
이에치란 건 고아 따위가 매춘부로 팔려 전락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만약 화족 공주님을 납치해왔다고 말하면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아니, 그보다 더 하등한 거지. 어쨌든 귀도 눈도 제 역할을 못 하거든. 그냥 인형이다 」
「 그런 걸 주워오셔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
「 내 방에 장식할 거야. 말했잖아, 인형이라고 」
주인의 드물게 유별난 취향에 질겁했는지 쟝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네 명의 경호원을 거느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이 건장한 남자들은 상하이에 있으면 어디든 찰싹 붙어서 따라온다.
방으로 돌아가면 방문 앞에서 굳은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저택의 주위에도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문 앞에는 검은 옷의 남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곳의 생활에서 내 주위에 사람이 끊어진 적은 없었다.
이게 대륙에서의 내 일상이다.
부하에게 그녀를 내 침대로 옮겨 눕히게 시킨다.
가냘픈 몸의 여기저기에 감긴 붕대가 애처롭다.
병원에서 납치한 건 좋았지만, 당분간은 일어나지 못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
내일은 의사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 잠든 얼굴은 정말로 숨을 쉬고 있는지 손을 대서 확인해보고 싶어질 정도로 고요해서, 그야말로 인형 같았다.
약으로 재운 뒤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육로로 모지(門司)에, 해로로 이틀 밤낮에 걸쳐 여기로 오는 동안 약의 효과가 끊어져도 그녀는 대부분 잠들어 있을 뿐으로, 일어나도 말은 없었다.
그 표정은 비참함 그 자체라 필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그녀도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눈은 보이지 않고, 말하고 있을 텐데도 자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런 상황도 파악할 수 없으니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녀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데려가지더라도, 무엇을 당하더라도, 되는 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잠든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 몸은 앞으로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 공주님…… 설마 당신을 여기로 데려와 버리다니, 나 역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어요…… 」
나는 절망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을 만큼 기뻤어……
그도 그럴게, 당신은 이제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겠죠? 그렇다면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 공주님…… 난 당신에게 결코 이런 식으로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은 눈도 귀도 잃어줬어요…… 있죠, 날 위해서인 거죠? 그런 거죠?
마치 나한테 채어가 달라고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 나한테 죄를 범하라는 듯이…… ! 」
대답없는 그녀를 향해 나는 끝없이 미친 것처럼 계속 외친다.
어차피 바깥의 무리는 일본어 따윈 해석할 수 없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주인이 뭔가를 일으켜 소리치고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그 악마는 죽였어…… 어머니도 죽게 만들었지…… 그리고 당신이 손에 들어왔어요……
이제 그런 집 따위, 아무래도 좋아요…… 하는 김에 사람을 시켜 불태우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조차 귀찮아……
당신이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
공주님…… 아아…… 귀여운…… 나의, 여동생……
데려와 버렸다…… 아아, 마침내 저지르고 말았어…… 당신은 내 여동생인데도…… 아아, 마침내…… 하하…… 아하하…… !
그치만!! 갖고 싶었단 말입니다, 당신이!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 아아……, 이제 돌아갈 수 없겠네요…… 네에, 난 이제 아무래도 좋아요, 피든 저주든……
그렇죠…… ? 여기에 있는 건 당신과 나뿐…… 여긴 대륙이라구요…… .
더이상 쓸데없는 것 따윈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
실성한 듯이 장광설을 계속 늘어놓은 뒤 간신히 나는 마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얌전해졌다.
그 기회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한다.
나는 한순간의 꿈에서 깨어나 단숨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 아아…… 뭐냐 」
「 리우 대인.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 여기로 가져와라. 두 사람 몫이다 」
「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
하인이 떠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리우 루이.
그것이 여기에서 내 이름.
리우라는 건 날 여기로 데려온 남자의 이름이다.
난 그 남자의 성을 받고 이름이 주어졌다.
리우는 아편 매매를 주된 생업으로 하는 조직의 거물이었다.
일본에도 많은 아편을 밀수하고 있었다.
내가 장래 거기서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겨 채어왔을 것이다.
두목이 갑자기 데려온 일본 아이는 리우 일가의 일원이 되어 곧바로 일을 배웠다.
복잡하게 얽힌 상하이의 뒷골목을 익혔다.
그들의 방식을 익혔다.
이윽고 허름한 방에서 좋은 방, 결국에는 저택을 받으며 나는 착실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와중에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두목이 그 오른팔로 불리던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정확하게는 남자와 내통하고 있던 외부 조직에.
나는 제일 먼저 움직여서 주모자를 살해, 그리고 식구를 판 그 남자를 잔혹한 방식으로 죽였다.
무절제하게 보이는 대륙의 암흑 사회 인간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건 동료 사이의 연대다.
형제를 파는 자에게는 죽음을.
그것이 규칙.
나는 그걸 계기로 리우 일가의 두목으로 추대받았다.
장사를 확대하자 누가 퍼트렸는지 어둠의 아편왕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그런 별명이 붙여지긴 했으나 누구나 아편을 흡입하는 이 나라에서, 나만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미 파멸로 이끄는 도취의 마약은 이 피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
「 들어와 」
몇 사람의 하인이 차례대로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접시를 올려놓는다.
잠시 침대 위의 그녀를 신경 쓰는 듯한 기색을 보였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내 방 밖으로 물러갔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안아 올리고 그 등 뒤에 베개를 늘어놓아 상반신을 일으키게 했다.
「 자, 일어나 주세요. 조금은 먹지 않으면 몸에 해로워요 」
가볍게 흔들자 그녀는 희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배 안에서는 거센 파도에 멀미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도 고파졌을 터다.
그녀는 음식 냄새를 알아차렸는지, 킁킁, 코를 약간 벌름거렸다.
침을 삼켜 목이 미약하게 움직인다.
역시 공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상하이 게의 수프를 떠서 식힌 다음 천천히 그 입으로 옮겼다.
그녀는 처음에는 입술에 닿는 숟가락의 감각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으나 이쪽의 의도를 헤아리자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느긋하게 맛을 보듯이 입에 넣은 뒤 삼킨다.
그리고 그게 독이 아니었다는 것에 안도한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 맛있어…… 」
「 …… 그렇습니까. 잘 됐네요 」
내 손으로 얌전히 식사하는 그녀를 보자 뛰어오르고 싶을 정도의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차례차례 숟가락을 옮겨 수프를 먹였다.
집오리의 뱃속에 찹쌀 같은 걸 채워넣어서 쪄낸 것이나, 해삼을 간장으로 조린 것을 조금씩 나눠 담아서 부지런히 입으로 옮겼다.
그녀는 잘 먹었다.
『맛있어』『이런 건 먹어본 적이 없어』라고 작게 웅얼거리며 만족스러운 듯이 담담하게 음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제 됐다고 다음 요리를 거부한다.
「 이제 배가 가득 찼으니까……. 고마워 」
「 그래요…… 그래도 잘 먹었군요. 안심했습니다 」
그녀의 입가에 묻은 작은 부스러기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나는 참기 어려울 정도의 사랑스러움에 몸을 떨었다.
나는 무심코 충동적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팔 안의 몸은 한순간 경직되었으나, 계속 어루만지자 점차 풀려간다.
내 팔을 허락해주고 있다는 실감이 가슴을 조여온다.
「 당신한테 위해 따윈 주지 않아요…… 당신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
날 받아들여 주세요.
빛도 소리도 없는 당신의 세계에, 그저 한 사람의 남자로서 날 받아들여 주세요────.
「 …… 정체불명의 약탈 집단? 」
「 네. 당장 수사 중입니다만, 아직 꼬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소수로 움직이는 것 같으나 아무래도 상당히 노련한 듯합니다.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
「 …… 어디의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무리로군……
우리와 청방(青幇)을 적으로 돌릴 셈인가 」
리우 일가는 청방의 산하에 들어가 있다.
그들과의 우호 관계 없이는 아편을 팔 수 없다.
아편 장사는 막대한 돈을 낳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장사이기도 했다.
도처에서 약탈이 일어나 노상에서도, 배 위에서도 습격당하고 만다.
청방은 그 약탈하는 일당을 인솔하고 있었다.
나는 두목을 만나 교섭해서 배당을 내놓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아편의 안전을 확보했다.
뇌물, 거래──── 이것들은 대륙의 뒷사회에서는 당연한 규칙처럼 만연해 있는 전통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따르는데 지나지 않는다.
「 청방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곧바로 놈들을 붙잡겠죠. 사소한 일이나 일단 보고 드립니다 」
「 아아. 고마워, 쟝. 네겐 정말 수고를 끼치는군 」
「 아뇨…… 이 목숨,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으니 저는 죽을 때까지 섬길 작정입니다 」
쟝은 오른뺨의 칼자국 때문에 뒤틀린 피부를 당겨 올리며 일그러진 미소를 만들었다.
그 상처는 이전의 주인을 지키려다 입은 것이다.
내가 하수인을 죽였기 때문에 쟝은 목숨을 건졌다.
그 일을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때, 복도에서 요란스러운 고함 소리가 울렸다.
「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사모님! 」
「 놓으세요! 난 아내라구요! 어째서 만나는 데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
「 …… 그 녀석인가 」
나는 그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지쳐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주인님! 」
문이 크게 열어 젖혀지고 가는 버드나무 같은 몸이 뛰어들어왔다.
쉔 슈에홍.
청방의 간부가 보낸 여자.
일본인과의 혼혈이지만 본토의 흙을 밟았던 적은 없다.
기루에 팔려서 평판 있는 가기가 되어 부호에게 낙적되었으나, 청방에게 강탈당해 흘러온 게 내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일본인이라는 걸 들은 그녀는 기뻐했다.
이제 대륙은 싫다, 부디 일본으로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고 청원했으나 내게 그럴 마음은 없다.
애초에 그 천성은 일본에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슈에홍은 불꽃처럼 눈부신 미모를 갖고 있었으나 그 마음 또한 불꽃처럼 격렬했다.
난 이내 넌더리를 내버렸지만 밀접한 관계에 있는 조직에서 보낸 선물쯤 되면 함부로 대할 수도 없기에 저택을 줘서 형식은 갖췄지만 아내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사랑이 없는 결혼에 길들었을 대륙의 여자치고 드물게 질투심이 강한 성질로 그녀가 왜 숨 가쁘게 여기로 왔는지 난 즉석에서 헤아리고 진절머리를 쳤다.
「 주인님, 어떻게 된 일이죠! 일본에서 눈먼 여자(盲妹)를 주워왔다니, 정말인가요! 」
귀녀(鬼女) 그 자체의 형상으로 다가서는 슈에홍에게 나는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고 얼굴을 돌렸다.
「 좀 봐줘, 슈에홍. 내가 뭘 갖고 돌아오든 내 마음이잖아 」
「 너무해요! 그야 하룻밤만의 놀이라면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방에 있게 하다니, 어떻게 된 거예요, 첩으로라도 삼을 셈인가요! 」
「 그것도 네가 알 바 아니야. 지금은 일 얘기를 하고 있다. 돌아가 」
「 아아! 너무한 사람! 」
슈에홍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 상하이엔 거의 돌아오지도 않고 내가 있는 곳에도 들르지 않아!
끝에 가서는 결국 맹인 여자 따위를 끌어들이다니! 전 그런 것보다 못한 여자인가요! 」
손댈 수 없는 상태의 슈에홍에게 쟝도 그저 곤혹해 할 뿐이다.
그때, 당황해서 방으로 들어온 것이 부하인 리진후이였다.
「 사모님. 저택으로 돌아가 주세요. 부디…… 」
「 싫어요! 나 오늘 밤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
「 리우 대인께서는, 오늘 밤은 이미 늦었으므로 내일 사모님께 가실 예정이셨던 겁니다.
사모님을 위해서 많은 선물을 지닌 하인의 행렬을 거느리고요 」
리의 말에 슈에홍은 눈물로 젖은 눈을 빛냈다.
「 어머…… 주인님, 정말인가요 」
「 …… 아아. 널 놀라게 해줄까 싶어서. 오랫동안 외롭게 만들었으니까 말이야 」
「 주인님! 」
슈에홍은 내게 달려들어 뺨에 입술을 착 붙인다.
농후한 장미 향기가 코를 찌른다.
「 기뻐요! 저, 내일 꼭 기다리고 있을게요 」
「 아아……. 어이, 누가 슈에홍한테 수행원을 붙여줘 」
간신히 방을 나간 폭풍우 같은 슈에홍에게 난 녹초가 되어 고개를 저었다.
「 리, 그건 그렇고 네 기지에 살았다. 고마워 」
「 아뇨……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일을 늘려버렸군요 」
「 상관없어. 쟝, 내일 아침 일찍 그 녀석이 기뻐할 만한 걸 어쨌든 대량으로 사재기해놔 」
「 잘 알겠습니다. …… 주인님도 빨리 정식으로 부인을 맞이하시는 게.
그 뒤라면 첩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
「 아아…… 그렇겠지 」
참견하는 쟝의 진언에 여느 때처럼 건성으로 대답을 반복하며 나는 재차 리의 재치에 만족했다.
리는 원래 도박에 열중하던 건달이었다.
승부에 강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서 사람을 속이는 게 능숙했다.
외모도 좋아서 여자가 많았다.
동료한테 팔려 경찰에 잡힐 뻔한 것을 내가 교섭하여 일가로 끌어들였다.
쓸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일찍이 나를 여기로 데려온 남자가 그렇게 여겼던 것처럼.
그녀는 순조롭게 회복해갔다.
한 달이 지나자 팔은 거의 완치, 나머지는 오른쪽 다리의 치유를 기다릴 뿐이다.
의사에 의하면 달리 나쁜 곳은 없으나 역시 시력이나 청력이 돌아올 조짐은 없다고 한다.
잔혹한 나는 안도했다.
나는 가능한 그녀의 곁에 붙어서 식사는 전부 손수, 볼 일이나 목욕까지 거들었다.
그녀도 이쪽에 악의가 없다는 걸 서서히 확신했을 것이다.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기 때문일까, 닿는 것만으로도 나인지 그 외의 인물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 그녀의 손바닥에 말을 쓰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도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으나 점점 그녀도 내 의지를 헤아리는 게 능숙해졌다.
「 있잖아…… 당신의 이름은 뭐라고 해? 」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을 무렵, 그녀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망설였으나 그 손바닥에 「루이」라고 썼다.
「 루이……. 멋진 이름이구나 」
지난날 나를 마지마라고 불렀던 입술이 지금은 나를 루이라고 부른다.
어느 쪽이든 내 진짜 이름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부르면 그거야말로 나의 이름인 것 같았다.
「 공주님.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단 것을 준비했어요 」
어차피 들리지 않는데도 말을 거는 버릇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주 맛있다고 말했던, 그 집사가 만든 핫 초콜릿을 흉내내어 만들게 시킨 걸 그 입에 머금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 입 마신 것만으로 멍하니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 어땠습니까? …… 맛있지 않았어요? 」
이상한 맛이 나진 않았을지 걱정하게 된다.
손바닥에 써보자 그녀는 제정신이 든 것처럼 눈을 깜박인 뒤 맑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 그리워……. 이 맛. 후지타가 만든 건 좀 더 달았지만…… 」
「 아아. 달콤함이 부족했던 거군요. 그럼, 다음에는 좀 더…… 」
「 …… 돌아가고 싶어 」
「 !! 」
그녀의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처음으로 한 향수 어린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보이지 않는다고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이 흘러넘치는 격정으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
「 돌아가고 싶어…… 루이. 있잖아, 여긴 어디야? 일본은 아닌 거지 」
음식의 차이나 의복의 감촉으로 헤아린 걸까.
그녀는 여기가 이국의 땅이라는 걸 가르쳐주지 않아도 깨닫고 있었다.
「 부탁이야…… 날 일본으로 돌려보내 줘, 루이…… 」
「 …… 안 됩니다, 당신은 여기에 있는 거예요. 평생…… 」
「 부탁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
「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런 몸으로…… 」
「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다구…… 」
그리운 맛으로 단숨에 외로움이 치밀어 오른 걸까.
그녀는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며 몹시도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 그만해 주세요…… 그런 말을 하는 건…… ! 」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내 팔 안에서 경직되는 몸.
아랑곳없이 힘껏 끌어안자, 뒤로 젖혀진 입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격정에 뒤흔들려 머리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뺨을 가져다 대고 그 입술에 처음으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 음…… 공주, 님…… 」
나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처가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손대지 말라고.
그러나 참을 수 없었다.
충동적으로 그 입술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한번 금기를 범해버리자 멈출 수가 없었다.
「 아아…… 공주님…… 하아…… 좋아합니다, 당신이 좋습니다…… 」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충격.
매일 정원에서 별 거 아닌 수다를 떨며 함께 놀았던 그리운 나날.
당신의 미소. 당신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 당신의 부드러운 손바닥.
이 몸의 저주받은 피가 당신을 원하며 욱신거리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모른다.
이런 불타는 듯한 갈망은 느꼈던 적이 없다.
그것은 오랜 세월 가슴에 품고 있었던 복수심과는 다른 격심함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안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사랑스러움이 불타올랐다.
눈을 돌릴수록 연정은 더해갔다.
이걸 이 저주받은 영혼의 탓이 아니라면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확실히 그녀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숱한 남자들이 그녀를 좋아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시적인 욕구가 내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녀를 붙잡아서 데려오고 말았다────.
「 음…… 아…… 아, 루이…… 읏 」
「 당신은…… 뭐든지 한다고 말했었죠…… 내가 당신을 빼앗아 버려도 되겠습니까……
매일 밤, 매일 밤 당신을 범하고 질리면 일본으로 돌려보내 줄까요……
당신은 그걸로 만족할 거죠…… ? 뭘 해서라도 나한테서 해방되고 싶은 거죠…… ? 」
나는 무아지경으로 그녀의 입을 탐하고, 혀를 얽고, 입천장 위를 덧그리며 그 몸을 옷 위로 애무했다.
외견보다 훨씬 풍만하고 생기있는 그 감촉에 나는 뜨거운 현기증을 느꼈다.
슬픔과 분노와 욕망과──── 모든 것이 뒤섞인 폭풍우 같은 감정에 농락당한다.
「 당신을 해방시켜주는 일 따윈 없어요…… 당신은 내 것이 된 겁니다……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 난 당신을 놓지 않을 겁니다…… 놔주지 않을 겁니다…… ! 」
「 루, 루이…… 」
문득 정신을 차리자,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내 뺨에 닿았다.
「 …… ! 」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열중해서 입을 맞추며 아이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 눈물을 손가락 끝으로 닦고 조심조심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 …… 미안해…… 」
「 …… 공주님…… 」
「 당신을 슬퍼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
「 읏…… 」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당신을 억지로 납치해 왔는데.
당신을 강탈해서 상하이에 데리고 와버렸는데.
당신은 완전히 피해자인데, 내가 눈물을 흘린 것만으로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건가.
「 당신은…… 어쩐지 그리운 냄새가 나 」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숨을 멈췄다.
「 아주…… 당신이 옆에 있으면 차분해져…… 어쩐지, 당신이 남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
「 공주, 님…… 」
──── 이 사람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있다.
그 깊은 업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 알고 있어…… 돌아간다 해도, 이런 몸인 나로서는 모두에게 폐를 끼칠 뿐이라는 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러니까…… 당신이 날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울고 있는 거라면…… 여기에 있을게……
당신이 날 소중히 여겨주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
「 …… 아아…… 」
나는 그녀의 깊은 애정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둘이서 울며 끝없이 서로의 입을 탐했다.
그건 이미 욕정의 입맞춤이라기보다, 서로를 위로하는 듯한, 상처를 서로 핥는 듯한 입맞춤이었다.
수년 만에 상하이에 오래 정착하고 있기 때문인지, 일전에 보고했던 강탈은 지금으로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단골 다관(茶館)에서 가벼운 식사를 취하며 부하들에게서 여러 가지 보고를 듣거나 지시를 내리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때,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리가 나에게 뛰어들어온다.
「 리, 리우 대인, 큰일입니다…… 」
리는 이를 악물고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고 낮은 목소리로 내게 귓속말을 했다.
「 조금 전 강탈 패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우린 동료를 총동원해서 뒤쫓았습니다.
몇 명을 붙잡았어요── 그건 좋았습니다만…… 그 사이 저택이 허술해져서……
리우 대인의 방에 있는, 그 여자 분이…… 납치당했습니다 」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붙잡은 남자들은 외국인으로, 변변히 이 지방의 말도 할 수 없는 패거리였다.
자기들은 그저 고용되어 보수를 받고 있었을 뿐, 위에 있는 조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여자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일관했다.
아무리 고통을 줘도 변하지 않으므로 이 남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연계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남자들이 모른다고는 해도, 미끼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빌어먹을…… 어디로 데려간 거냐…… 」
「 어떤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직 아무것도…… 」
「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초조함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무력한 그녀를 납치해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생각할 수 있는 건 날 향한 협박이겠지만, 역시 목적은 아편인가 ────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문득, 어떤 두근거림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갔다.
「 주인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
「 …… 냄새다 」
나는 방에 잠시 멈춰 서서 방 안에 희미하게 남은 냄새의 선율을 더듬었다.
사람의 체취에 민감한 나는 이질적인 냄새를 곧바로 구별할 수 있다.
──── 장미의 향기다.
그 여자는 이 향기를 몹시 사랑해서 곁에 있으면 숨 막힐 정도의 냄새로 불쾌해진다.
그 향기는 저택 안에 가득 차 있어 그곳에 출입하는 자는 적잖게 그 냄새가 배어들어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 슈에홍…… 」
「 엣…… 주인님, 설마…… 」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청룡도를 움켜쥐고 발걸음 소리 역시 난폭하게 방을 뛰쳐나갔다.
슈에홍의 저택에 뛰어들자, 그 여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도망친 뒤였다.
나는 저택을 샅샅이 뒤졌다.
도처에 있는 파수꾼들을 밀쳐내고 차례대로 방을 파헤쳤다.
안쪽의 방 앞에 경호원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이다, 라고 직감했다.
「 거길 비켜……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 」
남자들은 사정을 모르는 상태였다.
설마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건가?
여주인의 애인에게 위협을 받자 물러서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들은 잠자코 길을 열었다.
「 공주님!! 」
그녀는 속박당해서 커다란 침대 위에 쓰러뜨려져 있었다.
그 위에 남자가 네 사람 모여 있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허리의 청룡도를 빼들고 있었다.
「 우오오오오오오오오!! 」
「 우와…… 크아아아아악!! 」
내가 달려들자 남자들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나는 차례차례 그 무리를 베어 죽였다.
문 앞을 지키던 자와 마찬가지로 사정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몰랐으나, 그녀의 피부에 닿은 그 자체, 만 번 죽어 마땅했다.
「 공주님…… !! 」
나는 달려가서 곧바로 밧줄을 풀어주었다.
몸을 살펴보아 하니 옷은 찢어지고 하반신도 드러나 있지만 폭행당한 흔적은 없다.
간발의 차이였던 것이다.
지독한 안도와 동시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것 같은 공포심이 스쳐 간다.
──── 이 뒤로 몇 분만 늦었더라면.
「 루이…… 구해, 준 거야? 」
뺨이 약간 붉게 부어 있다.
얻어맞았을 것이다.
속박당하고 덮쳐 누르며 짐승 같은 손으로 만져대서 공포로 발버둥쳤을지도 모른다.
다리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는데 지독한 짓이다.
「 네에…… 죄송합니다…… 무섭게 만들어서…… 」
나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이렇게 된 것은 나의 부주의다.
계속 곁에 있어야 했다.
어떠한 때라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됐다.
「 리우 대인…… 사모님을 찾을까요 」
「 리, 당연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제 사모님 따위라고 부르지 마라. 그 여자는 배신자다. 주인님을 속인 것이다 」
「 그렇…… 겠지요. 그래도 뭔가…… 」
리는 무언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모습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 그 여성분은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린다고 했던가요……. 범인의 얼굴 같은 건 모르겠네요…… 」
「 아아……. 하지만 일단 상황은 물어볼까…… 」
나는 그녀의 손바닥에 당신을 채어간 범인에 대해서 뭔가 기억하고 있느냐고 썼다.
정말이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가 입에 담은 말은 나를 몹시도 놀라게 했다.
「 몇 사람인가 있었어. 장미 향기가 났어. 누군지는 몰라. 단지……
처음으로 날 안아올린 사람의 얼굴을…… 만졌어. 한쪽 뺨…… 아마 오른 뺨이 뭔가의 상흔 같은 걸로 일그러져 있었지 」
「 …… ! 」
「 에…… 그녀, 뭐라고 말하는 겁니까 」
나는 피투성이가 된 칼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칼 끝을 쟝에게로 향한다.
쟝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다.
「 …… 어째서 배신한 거냐 」
「 !? 서, 설마 」
쟝은 경직되어 나를 차가운 눈으로 지그시 노려보고 있다.
「 쟝!! 대답해라!! 」
「 어째서 배신했느냐…… 입니까 」
쟝은 기묘한 미소를 띄웠다.
「 그걸 묻고 싶은 건 제 쪽입니다. 주인님…… 아니, 더러운 일본인이여 」
「 뭐…… ? 」
조금씩 충실한 부하의 가면이 벗겨져 간다.
축적된 증오가 드러나고 있다.
「 그 날…… 제 진짜 주인님이 살해당했던 그 날……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너무 지나치게 선명한 수법…… 용의주도한 무대 설정…… 시원스레 살해당한 하수인……
뭔가 위화감이 있었던 겁니다…… 전 요 몇 년간 쭉 조사를 계속해왔습니다
그랬더니 말이죠, 있더라구요. 증언자가. 일본인이었지만요.
일본어를 해석할 인간이 이쪽에는 있었으므로…… 그 다음은 아시겠지요 」
──── 슈에홍인가.
내 앞에서 일본어를 말한 적은 없고 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애초부터 첩자였던 것 같다.
쟝과 내통해서 내 주위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 과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 충견이다.
죽었어도 여전히 충의를 관철할 줄이야.
나는 감탄하고 있었다.
그게 나에게 직접 향해진 충의였다면, 영원히 거둬주었을 것을.
「 당신은 아주 유능했어. 곧바로 그 분의 오른팔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지.
그렇지만 당신은 일본인이야. 이름을 바꿔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수해도 주인님처럼은 될 수 없지. 주위가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거기서 당신의 악마 같은 두뇌로 생각했던 게 그 암살 사건이었다.
스스로 공훈을 세워서 마침내 주인님의 지위를 빼앗은 게야 」
「 그…… 그럴 수가…… 설마 」
리는 나와 쟝을 번갈아 보고 있다.
눈에는 혼란과 시의심이 넘쳐 흐르고, 놀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 되지도 않는 말만 떠드는 입이로군…… 그런 말을 하면서 실제로 이 지위를 손에 넣고 싶은 건 너일 테지
내가 여기를 눈치채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녀를 먹이로 날 유인해서 죽일 속셈이었겠지만……
계획이 실패한 지금, 슈에홍은 이미 네 수하한테 제거당해서 살아있을 리 없어.
두목의 자리에 앉으면 정식 아내로 삼아준다고 라도 했나? 불쌍하게도 말이야…… 」
쟝은 순식간에 얼굴에 핏기가 올라 본 적도 없는 형상으로 고함쳤다.
품에 손을 넣어 둔탁한 빛을 발하는 총을 뽑았다.
「 되지도 않는 말만 하는 건 네 놈의 입이다!! 악귀 같은 일본인 새끼, 냉큼 사라져라!! 」
「 사라지는 건 너야 」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기세 좋게 발을 내밀어 목을 떨어트린다.
천장을 향해 피가 힘차게 솟구쳤다.
「 히익…… 」
리의 발치에 쟝의 머리가 굴러간다.
그토록 대단한 도박사조차 주사위는 굴려봤어도 막 잘라낸 목은 경험이 없는 듯, 안면이 창백해져서 떨고 있었다.
청룡도의 피를 쓰러진 쟝의 옷으로 닦아내고 허리의 칼집에 꽂아넣는다.
그리고 느긋하게 리를 돌아보자 재미있게도 깜짝 놀라며 경련했다.
「 …… 너는 어느 쪽을 믿지? 」
리의 목이 크게 꿀꺽 움직인다.
나는 선택지를 줬으나 실제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 물론…… 리우…… 대인…… 입니다 」
「 그래…… 그거면 됐어 」
나는 만족하며 입가를 위로 움직였다.
옆에서 망연자실하게 있는 그녀를 껴안고 그 체온에 도취된다.
( 다행이야…… 당신이 살아 있어서, 정말로…… )
「 ──── 천하는 찢어지려거든 찢어져라, 나라는 멸망하려거든 멸망해라, 타인이야 어찌 되든, 자신만 부귀하다면 」
「 에…… ? 」
「 오래된 일본의 말이다.
…… 지금이야 일본인은 대륙의 인간을 야만적이다, 무절제하다고 말하지만 일본 쪽이 상당히 야만적인 시대가 있었지.
자기만 좋으면 설령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 말이지.
지금의 일본인들도 명백하게 그 야만스러운 피를 잇고 있어……. 내가 그 좋은 증거다 」
「 리우 대인…… 」
리의 얼굴에 이성이 돌아오고 있다.
냉정하게 계산을 할 수 있는 도박사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
「 날 따라와, 리. 나를 결코 배반하지 마라.
내게 복종해라. 내 곁을 떠나지 마. …… 그러면 네게도 반드시 부를 가져다줄 것이다…… 약속하지 」
「 ㄴ…… 네……! 」
그 눈에는 공포와 도취가 동시에 떠올라 있다.
──── 이걸로 좋다. 당분간 이 남자는 나의 수족이 되어 움직여 줄 것이다.
배신자에게는 죽음을. 충절에는 포상을.
이걸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아편의 세계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이지 저 말은 나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일 따윈 아무래도 좋다 ──── 일본이 어떻게 되든, 대륙이 어떻게 되든, 구미 열강이 어떻게 되든.
나는 나와 그녀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그 공간만 있으면 좋은 것이다.
( 천하는 찢어지려거든 찢어져라, 나라는 멸망하려거든 멸망해라, 타인이야 어찌 되든, 자신만 부귀하다면…… )
아아…… 그 말대로다.
나는 그렇게 살아주지.
무시무시한 악마의 피를 이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나 자신만 행복하게 살아주겠다.
누구도 뭐라고 말하게 두지 않는다.
친동생을 사랑했다고 해서, 그게 뭐라는 거냐.
그런 건 이제 그 누구도 모른다.
( 아아……. 나는 살아 있다…… )
피 냄새에 떠는 여동생을 끌어안으며, 나는 눈앞에 낙원을 보았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이 팔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것만으로 나는 썩은 피가 정화되어 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 식사도 취하지 않고 나는 그녀와 침실에 틀어박혔다.
침대에 밀어 넘어뜨려도 그녀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팔이나 다리를 내게 감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려 온다.
「 루이…… 난 당신밖에 닿고 싶지 않아…… 당신이 껴안아줬으면 좋겠어…… 당신에게서 갈라놓아 지는 건 싫어…… 」
「 물론입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떼어놓지 않아요…… 당신은 나의 아내입니다…… 누구도 불평하게 두지 않겠어…… ! 」
열정이 부추기는 대로 몇 번이고 입을 빨아들였다.
그녀도 결사적으로 응했다.
희미한 신음 소리를 흘리며 내 목에 팔을 휘감아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이 강하게 안겨왔다.
「 하아…… 아…… 하…… 아아…… 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당신이 납치됐다고 들었을 때…… 분노로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어……
머리가 끓어올라서 아무것도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지……
난 이제 당신이 없으면 안 돼…… 당신이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아아……
당신하고 영원히 이렇게 서로 껴안고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공주님…… 아아…… 나의 여동생…… 나의 유리코…… ! 」
「 아…… 아…… 루이…… 좋아해…… 좀 더 날 껴안아줘…… 놓지 말아줘…… 」
나는 남자들이 만진 부분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처럼 그녀의 피부를 구석구석 애무했다.
부드러운 뺨을, 나긋나긋한 목을, 동그란 어깨를, 가냘픈 팔을────.
「 아아……, 아…… 루이…… 」
의복이 찢어져 그대로 드러난 젖가슴을 만지자,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를 높였다.
「 아아…… 공주님…… 」
나는 그녀 안에 파묻힌 채로 그 입술을 달콤하게 빨아들였다.
아직도 넋이 나간 것처럼 황홀해 있는 그녀는 나의 혀에 기쁜 듯이 달라붙었다.
「 내 안에서…… 당신이 가득 느껴져…… 」
「 네에……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 안에……
영원히…… 날 사랑하고…… 내 생애의 반려자가 되겠다고…… 맹세해 주세요……
공주님…… 사랑합니다…… 」
「 루이…… 사랑해…… 」
다시 몸 안의 불길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내게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휘감겨서 그것은 아편처럼 우리를 심취하게 만들어 도취의 극치로 유혹해간다.
처절하게 아름답고 감미로운 둘만의 방──── 아아, 그렇다. 여기가 이 세상의 호중천(壺中天).
좁은 항아리 속의 천국.
거긴 속세를 떠난 별세계──── 닫혀진 세계의 낙원.
우리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있는, 저주받은 세계에서 단 둘이서 희롱하며 유흥을 탐닉한다.
무시무시하게 문란한 윤회 속에서 우리들은 영원히 되풀이한다.
영혼에 새겨진 불치병을 품고 교차하며 살아간다.
당신을 안고 어디까지나 떨어진다.
항아리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멀다.
그 빛은 우리들의 어슴푸레한 요에는 닿지 않는다.
「 我愛你一輩子(wǒainǐ yībeizi)…… 」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꿈의 세계에, 깊이 가라앉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