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트립이……
모르핀의 일원이었다.

본인들의 입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밖에도…… 나 자신조차 몰랐던 일들을 잔뜩 들었다.

이해하기엔 너무 장황한 이야기라 무슨 말을 들었는지 곧바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서서히 그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하자 절망을 느꼈다.

동시에 분노도.

무엇에 대해서?

자신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토우에는 물론……

날 계속 속여온 이 두 사람.

바이러스와 트립에게.

그리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다.

믿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분명히 서 있었던 지면을 잃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는 모르핀 패거리에게 둘러싸여 당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실컷 걷어차여 입 안이 피 맛으로 가득 찬다.

의식이 탁해져서 질퍽하게 녹아간다.

시야가 기분 나쁠 정도로 느릿하고 크게 흔들리며 희미해진다.

 

「 이제 끝인가? 」

 

「 그럴지도 」 

 

「 어쩔래? 」 

 

「 응? 」 

 

「 아오바 씨 」 

 

「 아아…… 」 

 

눈꺼풀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조차 모를 어둠 속에서 바이러스와 트립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 음성은 평소보다 약간 톤이 다운되어 있긴 했으나, 구 주민 구역에서 대화를 나눌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엉망진창으로 당한 이 상황에서도 평소와 마찬가지.

그렇게 생각하자…… 오싹했다.

이게 이 자식들의 본성인가?

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태연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던 건가.

…… 망할. 

이제 여기까진가…….

내가 바보였던 걸까.

이 녀석들을 믿고, 매일을 극히 평범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틀렸던 걸까.

………………. 

………… 할머니. 

 

 

 

 

 

…… 이건. 

이 소리는……

…… 차의 진동? 

 

문득 눈을 떠보니 어슴푸레한 광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몇 번인가 눈을 느긋하게 깜박거려 보지만, 물속에 있는 것처럼 시야가 흐리다.

머리가 아프다. 욱씬욱씬해서 뭔가 생각하려고 해봐도 바로 멈춰버리고 만다.

여긴……

차 안인 걸까?

…… 누구의? 

 

「 준비해놓은 집까지 얼마나 더 걸려? 」 

 

「 음─, 앞으로 한 시간쯤이려나 」 

 

「 그래 」 

 

「 그나저나 하늘을 날았던 건 오랜만이었네 」 

 

「 아아. 우리가 없어진 걸 토우에가 눈치채는 건 좀 더 나중이겠지 」 

 

「 일할 때 말고는 자유롭게 어슬렁거렸으니까. 또 평소대로라고 생각하겠지.

    조종사도 확실하게 협박해놨고. 미도리지마까지 제대로 안전 운전해서 돌아가면 토우에가 눈치챌 때까진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뭐, 과연 컴퍼니 제트를 슬쩍하는 건 위험하니까 그만두긴 했지만, 어느 쪽이든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야 」 

 

「 그쯤은 이미 예상 끝났어. 우리가 사라진 걸 토우에가 눈치채도 모르핀의 일이 있으니까 대놓고 소란을 피우진 않겠지.

    국외까지 쫓아오는 귀찮은 짓도 안 할 거야. 수지가 안 맞을 테니까.

    게다가 우리가 가로챈 건 어디까지나 아오바 씨야. 토우에한테는 아직 세이 씨가 있어.

    세이 씨의 눈을 모델로 한 예의 그 장치도 완성됐고. 심각하게 추격해오진 않을 거야 」 

 

「 우리가 언제까지나 토우에 밑에 있을 리 없다는 걸 토우에도 알고 있었을 테고 말이야 」 

 

「 아아. 그 사람은 그런 가능성을 파악한 다음 우릴 이용했지.

    그러니까 이런 결과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 

 

「 이걸로 이제 일본엔 돌아갈 수 없어 」 

 

「 우린 그래도 별로 상관없지만, 아오바 씨한테는 좀 미안한 짓을 했나 」 

 

「 그렇게 말해도 애초에 돌려보낼 마음 없잖아 」 

 

「 뭐, 그렇지 」 

 

……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두통으로 사고력이 둔해진 탓에 이야기의 내용까지는 이해할 수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멍하니 있으려니 어떤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 깨어났어요? 아오바 씨 」 

 

「 ………… 

 

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아 시야를 가로막은 그림자가 바이러스라는 걸 알 게 된다.

그 얼굴은 평소처럼 싱긋 웃고 있다.

 

「 조금만 더 있으면 도착할 테니까요 」 

 

「 ……, 도착? 」 

 

입을 열자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왔다.

입술도 버석버석하게 말라 있다.

 

「 네. 도착하면 깨울 테니까 아오바 씨는 자고 있으세요 」 

 

자……?

…… 아니, 잔다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잘 생각해낼 수가 없다.

의지에 반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두통도 심해지기만 해서 구역질이 난다.

일어나 있을 수가 없다.

수면제인지 뭔지를 마시게 한 건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된 나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 아직 약 기운이 끊어지지 않아서 괴롭겠죠. 자고 있어도 돼요 」 

 

뭔가가 내 눈가를 가린다.

차갑다.

한순간 얼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아마……

바이러스의 손이다.

차갑다…….

마치 인형의 손처럼…….

그럼에도 약을 마셨기 때문인지, 지독하게 쏟아지는 졸음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바이러스의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만이 무뎌진 내 감각에 바늘처럼 박힌다.

…… 그 감각도 점점 멀어져 간다. 

검게 얼어붙은 어둠 속으로 의식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안 돼. 잠들면 안 된다.

일어나지 않으면……

빨리……

………… 

……………… 

 

 

 

 

 

…… 1. 

5.

4.

2.

1.

 

1.

5.

4.

2.

…… 2. 

…………. 

……………… 어라? 

지금 거 맞아?

아까가……

15421?

아냐.

15422?

…… 모르게 되었다. 

어디까지 셌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10000을 셌을 때쯤 영문을 모르게 되어서……

…… 그만뒀던가. 

그 다음엔 그저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수를 세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20000일지도 모르고……

30000일지도……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1.

5.

4.

2, …… 3?

 

1.

5.

4.

2……

 

「 ………… 」 

 

쥐죽은 듯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공간에 소리가 울렸다.

…… 돌아온 거겠지. 

그 외에 들릴 소리 따윈 아무것도 없으니까.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도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꼼짝도 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손도 발도 쓸 수 없다.

그러니 숫자를 세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단단한 바닥을 두드리는 느긋한 구두 소리가 났다.

구두 소리는 두 개.

 

「 다녀왔습니다, 아오바 씨 」 

 

「 다녀왔어, 아오바 」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의 귀환이다.

나는 잠자코 두 사람을 맞이했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은 내 체온으로 완전히 미지근해졌다.

…… 벌써 얼마만큼의 시간을 여기서 이렇게 있는 걸까. 

그래도 10000 이상의 숫자를 세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사실은 20000인지 30000인지 모르겠지만.

시간 감각은 벌써 옛날에 마비되어 버렸다.

플래티넘 제일에서 여기로 끌려와 얼마나 지났는지도 이젠 더 이상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의 귀가를 마냥 기다리는 것뿐.

…… 애벌레는 전진이나 후진밖에 못 해서 불편하진 않을까. 

그래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나은가. 지금의 나보다는.

 

「 아오바 씨, 제법 익숙해진 거 같네. 나갈 때 구속하게 된 지…… 슬슬 한 달쯤 됐나? 」 

 

「 그러네. 아마 그 정도 」 

 

「 처음엔 도망치려고 해서 제법 날뛰었지만 말야 」 

 

「 손발을 구속한 부분이 긁혀서 상처가 생기기도 했고. 지금은…… 상처도 꽤 옅어졌어 」 

 

어느 쪽인가의…… 아마, 트립의 구두 소리가 다가와서 내 옆에 웅크려 앉아 수갑으로 연결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보이진 않지만 두 사람이 어디쯤 있는지는 소리로 대충 알 수 있다.

시야가 가려진 만큼 몸이 청각에 의존하려는 걸 테지. 위치 관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들린다.

 

「 익숙해지는 건 좋은 징조로군 」 

 

「 아아. 아─ 그치만 」 

 

트립의 기척이 가볍게 움직인다.

 

「 싸버린 거 같아 」 

 

싸버려……?

……아아, 그런가. 

계속 같은 자리에 누워있어서 깨닫지 못했다.

이미 그런 감각까지도 마비되어 버린 건가.

후각도……, 아니.

그런 것조차 익숙해져 버렸을 것이다.

 


나는 지금 눈이 가려진 데다 두 손과 두 발이 구속된 채 바닥에 누워있다.

손목과 발목에 각각 수갑이 채워져서 그 사슬 부분이 또 다른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자세밖에 취할 수 없다.

그래서 난 굴려지는 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애벌레처럼.

그렇지만 이 처사에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기보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다 보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처음 한동안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손발이 수갑에 긁혀 아파질 뿐이었다.

계속 몸을 둥글게 말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으면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일어날 수 없는 고통에 미칠 뻔한 적도 있었다.

자기 몸인데 자유롭지 않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도 아우성치지도 않는다.

바닥에 뒹군 채 시간이 지나가기를 오로지 기다릴 뿐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괴로웠던 관절의 아픔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줌을 싸버린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트립의 말을 들어도 남의 일처럼 「 또냐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줌을 싸버렸을 땐 울고 싶어질 정도의 수치심과 비참함에 시달렸음에도.

아슬아슬할 때까지 참았지만 무리라서…… 분해서 울고, 어째서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내가 뭘 했는데?

토우에의 연구에 의해 태어난 디자이너 베이비라서?

그게 잘못된 거야?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처사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누구를 원망해야 해?

운명이나 신?

바이러스랑 트립?

토우에?

할머니?

자기 자신?

…… 이젠 아무래도 좋아.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

죽여달라는 생각조차 했다.

그런 식으로 분해서 눈물을 흘렸던 건 몇 번째 정도까지였더라…….

이미 잊어버렸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한다고 말했던 건 바이러스였던가.

그 말, 진짜였구나.

 

「 싸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어 」

 

바이러스의 구두 소리가 다가와 트립 옆에 선다.

 

「 인간의 생리적 현상이니까 말이야. 나올 건 나와야지 」 

 

「 그건 그래 」 

 

「 그치만 뭐, 이 느낌이라면 슬슬 그만해도 될지도 」 

 

「 뭘? 」

 

「 우리가 나갈 때 아오바 씨를 구속하는 거 」 

 

「 아아. 그러네 」 

 

오늘 저녁은 뭘로 할까, 라는 대화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다.

그 담담한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사실은 나보다 이 녀석들이 평범한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나만 이상한 거고 이 녀석들은 정상인 게 아닌가…… 하고.

뭐가 올바르고 뭐가 그릇됐는지.

그걸 판단할 힘도 이제 없다.

그렇다기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걸 판단할 수 있어봤자 지금의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우니까.

 

 

 

 

 

예전에 이 녀석들한테 목소리의 힘을 써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이 녀석들은 세이의 눈을 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기들 눈을 조작해뒀다고 했었다.

안구를 통째로 인공물로 갈아 넣었다는 듯하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건드린 건 눈 뿐이다.

그렇다면 청각을 통한 침입이 메인인 내 목소리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시험해봤던 적이 있다.
 


……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바이러스도 트립도, 내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무 변화도 없었다.

어째서 효과가 없었던 걸까?

구속당해 방치된 오랜 시간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분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치려는 자아를 무의식중에 붙잡아 두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본인들도 말했던 것처럼 바이러스와 트립에게는 명확한 집념이나 욕구가 없다.

비원, 증오. 그렇게까지 무겁진 않더라도 목표, 목적.

살아가기 위한 지표.

그런 게 아무것도 없다.

즐겁기만 하면 뭐든 좋다고 했었다.

그 상태는 평범하지 않다.

그건, 즉……


마음의 어딘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사람은 많든 적든, 마음 속에 보이지 않는 응어리를 품고 살아간다.

그건 희로애락 가지각색으로 다양하지만, 특히 분노나 슬픔의 응어리는 마음 그 자체에 굴레를 씌워버린다.

스크랩은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과거의 기억이나 집념, 분노, 회한……

그런 것에 대해 작용하여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목소리의 힘으로 상대의 의식을 이리 끌어들여서 방심한 상태가 되었을 때 상대의 안으로 개입한다.

물론 마음에는 부정적인 응어리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이나 애정, 후회, 죄악감 같은 것도 채워져 있다.

스크랩은 그걸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딱히 마이너스적인 부분만을 부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노리면 플러스 부분에도 효과적이다.

즉, 의도적이든 아니든 스크랩은 쓰는 방식에 따라 상대를 폐인으로 만들 수 있다.

…… 그런데 바이러스와 트립에게는 그 힘이 먹히지 않았다. 

적어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내 목소리를 들은 다음 멍하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거, 스크랩이군요.

그 때는 믿을 수가 없어서 아연실색했지만, 지금이라면 어쩐지 알겠다.

녀석들은 텅 빈 것이다.

텅 빈 마음에 뭔가 즐거운 걸 집어넣으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넣어도 가득 채워지는 일은 없다.

애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그릇이니까.

그러니 두 사람에게 스크랩은 통하지 않는다.

스크랩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게 두 사람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된 시점에서 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인형처럼 느껴졌다.

인형을 상대로 스크랩은 먹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

 

「 괴로운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오바 씨. 괜찮습니까? 」 

 

그다지 걱정하는 티도 안 나는 바이러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 그래도 폭력 이외에 인간의 자유의사를 빼앗기에는 이 방법이 효과가 절대적이랍니다 」 

 

「 스스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해놓고 방치 플레이하는 거지 」 

 

「 아오바 씨에게 불필요한 상처는 주고 싶지 않으니까 폭력은 NG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이 되어버리는 거죠 」 

 

바이러스의 목소리가 중단되고 머리카락에 뭔가가 닿았다.

바이러스가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것이리라. 자그마한 자극이 스쳐 가서 나는 아주 살짝 몸을 흔들었다.

 

「 이런 상태론 당연히 화장실에 갈 수 없을 테니 실수하는 것도 이미 상정했던 일입니다.

    그렇지만 아오바 씨는 싫겠죠?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다 큰 어른이 오줌을 싸버리다니.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항을 느낄 겁니다. 절대로 싫다고 생각하겠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지리고 말아요. 몸의 자연스러운 욕구니까요.

    그렇다 해서 순순히 그럴 수는 없었겠죠? 굴욕적이니까. 너무 비참해서 울고 싶어질 정도로 」 

 

목소리가 가깝다.

그 어조는 평소보다 다정해서 아이를 타이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부러다.

말하는 내용은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내 상황을 굳이 설명해서 내가 외면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재인식시키려 한다.

과거의…… 내가 아직 이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의 심경을 트레이스한 듯한 말에 싫은 기분이 된다.

이것도 책략의 일환이리라.

내 자유 의지를 빼앗기 위한…….

 

「 뭐, 우린 아오바가 뭘 싸든 전혀 신경 안 쓰지만 」 

 

「 네, 신경 안 써요. 하지만 우리는 괜찮아도 아오바 씨가, 그렇죠? 」 

 

머리를 어루만지는 바이러스의 손이 멈추고 목소리의 거리가 트립과 비슷한 곳까지 떨어진다.

어조도 평소 상태로 돌아간다.

 

「 그런 심리적인 갈등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리 악착같은 사람이라도 프라이드가 조금씩 깎여나갑니다.

    그게 아오바 씨, 이제 와서 도망치려는 생각은 안 하잖아요? 」 

 

「 ………… 」 

 

「 거역하는 건 체력과 기력의 낭비야. 우리가 하는 말을 순순히 듣는 편이 훨씬 편하다구, 아오바 」 

 

「 맞아요.

    아오바 씨가 체념해서 우리한테 붙잡혔을 때. 그때가 우리의 결단으로 이어진 겁니다 」 

 

「 아오바가 포기하지 않으면 내버려 둘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약해져 있으니까 붙잡아 달라고, 우리한테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 」 

 

두 사람의 목소리가 훨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들려온다.

아득히 멀리서…… 나로서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기에 있는 한, 넌 절대로 기어 올라올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 우린 딱히 토우에한테 충성을 맹세한 것도 아니니까요.

    모처럼 아오바 씨를 사로잡을 수 있는 틈이 보였는데 거기로 뛰어들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 동경하는 아오바를 앞에 두고 말이야 」 

 

「 그래요. 자, 그럼 슬슬 욕실로 가볼까요. 씻어드릴게요 」 

 

「 ………… 」 

 

바이러스인지 트립인지, 둘 중 누군가가 내 손발의 수갑을 풀고 등을 안아 일으키려 한다.

그 움직임에 재촉당한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닿아있던 반신에서 얇은 막이 벗겨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그 부분은 미지근하게 젖어있어서 수분이 중력을 따라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 아아. 

바닥과 몸을 적시고 있던 자신의 오수다.

이미 더럽다고도 싫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거의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있었기에 걸으려고 하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관절이 삐걱삐걱거린다.

비틀거리는 걸 양옆에서 부축받으며 나는 욕실로 데려가졌다.

 

 

 

 

 

바이러스와 트립의 유도로 뜨거운 물이 얕게 깔린 욕조 안에 앉혀진다.

손발은 자유로워졌지만 눈가리개만은 그대로다.

잠시 후, 위에서 샤워기의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렸다.

물을 빨아들인 눈가리개의 천이 눈가에 찰싹 달라붙는다.

날뛰었을 때 생긴 수갑의 상처는 다 나아가는 듯, 물이 흘러도 그만큼 따갑지 않았다.

따가운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 오늘은 내가 머리카락을 감기겠습니다 」 

 

「 그럼 난 몸이네 」

 

욕실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동안에도 멍하니 샤워기의 물줄기를 계속 맞고 있으려니, 머리카락에 찌릿한 아픔이 스쳐 갔다.

 

「 …… 읏 」 

 

바이러스가 내 머리카락을 신중하게 살며시 다룬다.

그래도 역시 다른 사람이 건드리면 자극을 느낀다.

 

「 ……, 으…… 」 

 

나는 숨을 죽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바이러스의 손가락이 거품을 일으킨 샴푸로 천천히 두피를 문지르며 머리카락을 뒤섞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때마다 근질거림과도 비슷한 통증이 머리카락에서 영향을 끼쳐와서 난 무심코 욕조 테두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를 낸다.

 

「 아오바 씨는 머리카락에 감각이 있으니 큰일이네요. 부드럽게 감기지 않으면 안 되겠죠 」 

 

등 뒤에서 바이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 후……, 윽…… 」 

 

「 움찔움찔하는 아오바는 귀엽지만 말이야 」 

 

트립이 내 다리를 들어 올려 스펀지 같은 걸로 씻기기 시작한다.

 

「 원래는 세이 씨도 머리카락에 감각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는 거 같아요.

    이렇게 말은 해도 세이 씨는 태어나자마자 연구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아프다거나 아프지 않다거나,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겠지만요 」 

 

세이…….

투명하리만치 창백하고 생기가 없는 얼굴이 뇌리에 희미하게 떠오른다.

…… 구해주고 싶었다. 

 

「 세이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인형 같았거든? 죽어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 

 

「 그랬지 」 

 

이 두 사람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세이를 알고 있다.

얼마나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이는 옛날부터 계속 저런 느낌이었을까.

그런 식으로,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듯한 상태였던 걸까.

세이…….

 

「 ………… 윽 」 

 

세이를 생각하자 갑작스럽게 분노인지 울분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게 가슴에 소용돌이치는 걸 느꼈다.

그 충동에 내 감정은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던가, 라며 놀란다.


세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휘몰아치는 감정이 강해진다.
 

내가 좀 더 빨리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할머니랑 평온하게 살고 싶다고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도 세이는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

전신에 많은 기계나 튜브를 붙여져서 데이터를 채취당하며.

지금의 나 같은 것보다 더 괴롭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그렇지만 도와줄 사람은 절대 오지 않으리란 것도 알면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혼자 발버둥 치고 몸부림치며……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어버렸겠지.

구조 따윈 오지 않는다. 주위의 인간들은 자기를 그저 실험 재료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비통한 절규도 닿지 않는다.

아무도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는다.

몇 번이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절망해서, 죽음보다도 더 잔인한 처사를 계속 받으며 마지막으로 선택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뭔가를 느끼거나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주위에서 바라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불필요하게 상처 입을 일도 없다.

마음을 무(無)로.

그게 분명 세이가 도출한 답이었으리라.
 


……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아무것도 느끼지 마.

어차피 언젠가 닳아 없어져 버릴테니까.
 

어쩌면 그렇게 자아가 완전히 붕괴되는 걸 본능적으로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내겐 세이의 심정을 쓰라릴 정도로 잘 알 수 있었다.

세이…….


「 어라, 아오바 씨. 왜 그래요? 욕조에 손톱을 다 세우고 」 

 

내 반응에 흥미가 솟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손을 멈췄다.

 

「 하항, 혹시…… 세이를 떠올려서? 」 

 

「 ………… 읏.

    …………, 세이는…… 」 

 

오랜만에 쥐어짜 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심하게 쉬어있었다.

 

「 세이 씨가 왜요? 」 

 

「 …… 세이는, …… 지금…… 」 

 

말하면서 손톱을 꽉 눌러 욕조를 강하게 움켜쥔다.

이 두 사람에게 내가 먼저 뭔가를 물어보다니…… 두 사람의 지독한 처사를 참는 것보다 훨씬 더 굴욕적이었다.

그렇지만……

세이는 지금 무사한 걸까.

제대로 살아있긴 할까.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동시에 어째서 이렇게나 세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든다.

세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갈망하는 것처럼 깊이 생각하려 한다.

그 근본에 있는 건 아마도…… 현실 도피와 죄악감이다.

세이를 구해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난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그 대신에 나는……

세이가 맛봤던 고통을 상상하고 그 심경을 헤아리며 자신과 겹쳐서 공감하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이는 지금의 나 같은 것보다 훨씬 괴로워했을 터. 그러니 난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 지금 자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한다.

그런 식으로 세이를 현실 도피의 핑계로 삼는 걸 나 스스로도 깨닫고 있어서……

그래서 참회하는 것처럼 세이를 향한 마음이 흘러넘친다.

죄악감이 세이를 향한 후회에 가속을 붙인다.

………… 최저다. 

 

「 세이? 세이에 대해서 알고 싶어?

    헤에, 아오바가 우리한테 질문을 다 하다니 별일이네. 역시 쌍둥이 형이라 신경 쓰이는구나 」 

 

「 그렇겠지 」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명백하게 즐거운 듯한 기색이 배어난다.

…… 이렇게 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싫었다. 

이 녀석들을 이 이상 즐겁게 해주고 싶지 않다.

빨리 그저 단순한 빈 껍데기가 되어 질려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녀석들은 흥미를 잃은 장난감 따윈 냉큼 내팽개칠 것이다.

어떤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날 죽이겠지.

가능한 한 그렇게 되도록 할 작정이었는데, 세이한테 관련된 일이 되면 브레이크가 먹히질 않는다.

이지러진 어둠 속에 켜진 불꽃처럼 내 안에서 감정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 아오바 씨. 세이 씨에 대해선 꼭 대답해드리고 싶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가 살아있는지 어떨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린 이미 미도리지마에…… 아뇨, 일본에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 


「 조사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야 」 


「 네. 그런데 우린 애초부터 그만큼 세이 씨한테 가깝지는 않았어요.

    시중을 드는 역할이라 해도 신변을 돌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시역이었고요 」 


「 겸, 보디가드였지. 신변을 돌보는 건 전속 연구원이 했었으니까 」


「 뭐, 세이 씨의 능력을 들었을 땐 정말 놀랐었지만요.

    그야말로 신이나 마법사 같다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도 인공적인 게 아니라 천연이라니 」 


「 그래도 세이는 처음부터 토우에한테 있었고. 그런 상태였고. 굉장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흥미는 없었다고나 할까 」 


「 맞아요, 저게 바로 절벽의 꽃이란 거겠죠 」 


하는 말에 비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시원스럽게 말하며 바이러스가 다시 샴푸질을 하던 손을 움직였다.

그때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은 아픔이 머리카락에 스쳤다.


「 윽…… ! 」 


「 아, 미안해요. 괜찮습니까?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엉켜서 좀 잡아당겨 버렸네요 」 


「 아오바, 이쪽 다리 올려봐. …… 그래 」 


트립도 다시 몸을 씻기기 시작한다.

욱신욱신거리는 머리카락의 감각을 견디며 난 들은 대로 가볍게 다리를 들었다.


「 세이의 힘에 대해선 알고 있었으니까 아오바의 힘을 알았을 때도 정말 놀랐어 」 


「 세이 씨처럼 굉장한 인간이 둘이나? 라고 말이죠. 더구나 그게 쌍둥이였다니, 생각조차 못 해봤었죠.

    전 미신이라던가 그런 종류는 믿지 않는 편입니다만, 과연 운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 


「 처음 만났을 때의 아오바, 진짜 엄청 멋있었고 말이야 」 


「 그 시절의 아오바 씨는 지금으로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난폭했었죠.

    걸핏하면 싸우고 약도, 술도 했었고, 여자하고도 놀아났었고요.

    그래도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이성을 잃는다던가, 그런 일선은 넘지 않도록 하고 있었던 거 같지만요 」 


「 ………… 」 


옛날 일이 분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예전의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전보다는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양친이 미도리지마를 떠나고 나서부터……


나는 조금씩 불안정해져 갔다.

그때까지 즐겁다고 생각했던 일로 웃을 수 없게 되고, 슬프다고 생각했던 일로 울지 않게 되었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원인을 몰라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모든 감각이 흐려져서……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건 길을 벗어나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당돌했다.

갑자기 모든 게 불안해져서 어쩔 수가 없어지고 할머니도 포함한 주위가 죄다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정체불명의 공포에 휩싸여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는 나날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걱정하며 모습을 보러 와도 열쇠로 잠긴 문을 노크할 때마다 몸을 떨었다.

노크 소리가 날 몰아붙이는 발걸음 소리로 들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빨리 사라져 달라고,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이어져 난 점점 쇠약해져 갔다.

방에서 나오는 건 화장실에 갈 때뿐,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아무것도 할 기력이 솟아나지 않아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봤을 때 생각했다.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뭔가에 겁먹는 것도 신경을 쓰는 것도 지쳤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불안정해졌는지도 모르겠고, 뭐가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는 것도 지쳤다.

살아있든 죽었든, 아무래도 좋다.

그치만 막상 죽으려고 하자 그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조차도 번거롭다.

그렇다면……

제일 아무래도 좋은 흐름에 몸을 맡겨보도록 할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자기가 즐기는 방향으로만 살아가는 패거리를 알고 있다.

뒷골목 같은데 우글우글 모여서 무절제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듯한 녀석들이다.

지금까진 그 녀석들하고 관련되지 않게끔 살아왔지만, 그 녀석들은 그 녀석들 나름대로 타락한 즐거움이라는 게 있으리라.

그러니 저런 종류의 패거리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

그걸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아무래도 좋았던 나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녀석들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자기 자신을 일부러 깎아내리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타락했다고 불리는 방식의 삶. 집에도 거의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룰에서 지나치게 벗어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처음부터 귀찮다고 생각한데다 애초에 성격에 맞지 않기도 했으리라.

게다가 뭘해도 즐겁다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어딘가 공허해서 감정을 가동시키는 곳에 필터가 씌워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걸 했다.

그리고 나는……

사고, 아니…… 사건을 일으켰다.


라임 대전 상대의 정신을 파괴해서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때의 난 의식적으로 스크랩의 힘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남과는 다른 힘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나는 그 힘을 쓰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 없이 오히려 우월감조차 품고 있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난 남들과 다르다는 특별한 감각에 취해 있었다.

그때까지도 힘을 쓴 적은 있었지만, 상대를 망가트릴 때까지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대전 상대가 재기불능이 되었음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난 뭔가 당치도 않은 짓을 해버린 거라고.

라임으로 폐인이 된다. 그런 이야긴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된 녀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남의 일 같아서…… 실제로 자신이 일으키고 나서야 사건의 중대함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전신의 핏기가 순식간에 가시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다음에 눈을 떴을 땐 병원의 침대에 있었다.

왜 병원에 있는 거지?

애초에 뭐가 있었던 거지?

나는 그때까지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다.

이쯤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직 기억이 애매하다.

할머니는 「싸움에 말려들어서 의식을 잃어 일시적인 기억 장애가 일어났을 뿐이라고 경찰한테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아마 당시엔 나도 그런 식으로 설명을 들었을 터.

그래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난 스크랩의 힘을 써서 대전 상대를 폐인으로 만들고 정신을 잃었다.

동시에 그때까지의 기억도 사라졌다.

할머니가 말했던「내가 간호사한테 가볍게 스크랩을 했다」는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나는 퇴원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살다시피 눌러붙어 있던 남쪽 지구에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게 되었다.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어딘가 모르게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었다.

라임은 하기 싫고 남하고 얽히기도 싫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라임에 참가했을 때 원한을 실컷 샀었기에 이따금 걸려오는 싸움에 응한 일은 있었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자신의 안에서 뭔가가 달라졌다.

그렇지만 그게 뭔지를 모른다.

난 뭘 잊고 있지?

기억이 누락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그 떨떠름한 감정을 품은 채 어두컴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미즈키를 만난 건 그런 무렵이었다.

내가 싸움을 걸어온 상대를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걸 보고 있었던 듯, 리브 팀으로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 제안은 거절하면서도 미즈키와는 마음이 맞아서 어쩐지 함께 있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지내고 있을 때, 내가 한층 달라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원인은 라임을 할 때의 인연이었지만,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싸움을 걸어왔다.

완전히 얌전해졌다는 둥, 전의 기세는 어쨌냐는 둥 실컷 부추겨진 나는 격분해서 녀석들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줄곧 꺼지기 직전의 등불 같았던 감정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폭발한 느낌이었다.

답답했던 매일이 울분이 되어 조금씩 쌓여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난동을 부려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개운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기혐오, 후회, 분노, 짜증.

그것들을 최대한 떠안은 나는 경찰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은 다음 강제적으로 자택에 끌려갔다.

집에는 이미 며칠째 돌아가지 않았으니 당연히 할머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건 혐오감이 아니라, 어느 쪽이냐 하면 죄악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때의 난 빈껍데기나 마찬가지라 허세를 부릴 기력도 남아있지 않아서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은 할머니는 거실의 식탁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난 아무 말 없이 거실을 지나 곧바로 2층에 향하려 했다.

…… 그때, 보고 말았다.

혼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할머니의 등을.

난 가위에 눌린 것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작은 어깨는 자세히 보니 가늘게 떨리고 있어서……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그 날은 우연히도 내 20살 생일이었다.

나 자신은 완전히 잊고 있었던.

나를 걱정해서인지, 내가 한심해서 분함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

그 중 어느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됐을 때, 난 바로 옆에서 배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서 자포자기가 되어 제멋대로 굴고.

그게 할머니를 이렇게나 걱정시키고 있었을 줄은……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할 얘기지만, 난 정말 바보라서 그제서야 간신히 실감했다.

그때까지도 할머니한테 실컷 혼났었는데도, 말없이 우는 그 모습이 왠지 가슴에 박혔다.

언제나 완고한 면밖에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약한 부분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나 양친보다 나이를 먹어서 약하고 가늘며……

이렇게나 작다.

그런 할머니를 걱정시키며 난 자신에 대해서밖에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로……

…… 뭐하는 거야, 나.

어차피 할머니도 나 같은 건 없는 편이 좋을 거라고 그렇게 믿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만약 정말 그랬더라면 분명 이런 식으로는 울어주지 않는다.

난…… 대체 얼마나 지독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나를 계속 생각해주는 이 작은 사람에게.

그 자리를 참고 버티며 방으로 돌아간 나는 혼자서 울었다.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를 눈물로 전부 흘려보내려는 것처럼,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뜰 수 없게 될 지경까지 마구 울고……

다음 날 아침, 할머니한테 사과했다.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서 사과하고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는 어제 울고 있었던 게 거짓말처럼 찌푸린 얼굴로 날 노려봤지만,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살짝 웃었다.

그리고……

「 알고 있단다 」 라고 말했다.

그때의 할머니는 맥이 빠졌다고 할까, 또 어제처럼 한층 작아진 것 같이 보여서, 난 더 이상 절대로 민폐와 걱정을 끼치지 않겠노라 결정했다.

지금까지 할머니의 보호를 받아왔으면서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할머니보다 훨씬 커졌으니 이번엔 내가 할머니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때까지의 타락한 생활 방식을 싹 갈아치웠다.


………… 할머니.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



「 슬슬 헹굴게요 」 


「 ………… 」 


바이러스의 목소리가 날 현실로 되돌린다.


「 트립. 아오바 씨의 팔 약간만 들어줘 」 


「 이렇게? 」 


「 그래. 반대쪽 팔도 」 


「 네, 네.

    아오바가 난폭했던 무렵의 라임 말인데, 아직 우스이가 없지 않았나? 실험 단계라는 느낌으로 」 


「 맞아요. 당시의 라임은 우리도 빈번하게 라임 참가자의 데이터 수집을 하고 있었죠 」 


내가 듣고 있든, 안 듣고 있든 상관없이 두 사람은 일방적인 페이스로 좀 전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 모르핀은 아직 인원을 확대하는 도중이었고 라임도 우스이가 없어서 아마추어 프리 게임 같은 모습이었고.

    라임이 유행하기보다도 전에 그야말로 모르핀이 생기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토우에는 인공적으로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이식하기 위한 토대……

    적성이 있는 아이들을 모으고 있었거든요.

    나하고 트립도 그중에 있었습니다 」 


나랑 세이도 바로 그 일부분으로 만들어진 디자이너 베이비였다.

그렇지만 바이러스랑 트립도 토우에가 모은 아이였던 건가.

그런 의미로는 이 녀석들도 토우에의 피해자라는 게 될 것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치고…….

바이러스가 지금 말했던 모르핀의 인원 확대.

그게 구 주민 구역에서 종종 소문이 퍼지던 「행방불명」 이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행방불명의 소문이 나돌고 있을 때는 모르핀이 움직이고 있을 때다.


「 옛날엔 라임 참가자에서 적성이 높아 보이는 인간을 가끔 잡아오고 있었습니다만.

    리브스티즈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약간 대상을 바꿨습니다.

    최근엔 라임에 반감을 가진 리브가 늘어났잖아요?

    뭔가의 감정에 강하게 사로잡힌 인간 쪽이 바로 이성을 잃어버리니까 조종하기 쉽거든요 」 


「 한층 더 많은 인간을 모아서 한꺼번에 테스트도 할 수 있으니 리브 팀이란 건 형편상 좋았단 얘기지 」 


「 ………… 」 


그중에는 드라이 쥬스도……

미즈키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욕조에 손톱을 빠드득 세우자 바이러스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능청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 그러고 보니 저번에 끌어들였던 드라이 쥬스는 아오바 씨 친구분의 팀이었죠.

    구성 멤버들은 싱겁게 나가떨어졌지만, 리더인 미즈키 씨는 과연이라고 할까, 약간 애를 먹었어요 」 








「 망할…… ! 얘기가 다르잖아!! 

    드라이 쥬스가 모르핀의 일원이 된다는, 그런 얘기였을 텐데!! 」 


「 네, 그 말대로 입니다 」 


「 그럼 팀 녀석들을 해방해라! 어디로 데려간 거냐! 」 


「 아아, 지금쯤은 벌써 풀려난 거 아냐? 」 


「 …… 하…… ? 」 


「 당신의 동료들은 이미 이쪽에서 처리가 끝났습니다. 머릿속을 손 좀 봤어요.

    약간 거친 짓을 해버렸지만, 기절한 동안이 제일 처리하기 쉽거든요. 옮기기도 쉽고 말이죠 」 


「 거기다 핏자국이라든가, 그런 걸 남기는 편이 모르핀의 이상한 전설이 더 리얼해지잖아?

    뭐라더라…… 원인불명? 」 


「 행방불명이야 」


「 그래, 그거 」 


「 …………, …… 니네, ……무슨, 말을…… 」 


「 근데 과연 리더랄까. 너, 바로 정신을 차린 데다 처리하려고 해도 쉽게 안 당하고.

    그래서 여기까지 데려와 버렸다는 뜻이야 」 


「 괜찮아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드라이 쥬스는 제대로 모르핀의 일원이 될 겁니다.

    의지를 잃어버린 순종적인 인형으로서 말이죠. 모르핀에 충성을 맹세한, 쓰기 편한 장기말로 일해줘야겠어요 」


「 빌어먹을…… !! 」 


「 지금 얘기한 거 기억해두려 해봤자 소용없어. 나중에 이쪽에서 지울 거니까 」 


「 마지막에 뭔가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이렇게 말해도, 별로 죽는 건 아니지만요 」 


「 예를 들자면 누구한테 전할 말이라던가 」 


「 그래요. 친구분인 아오바 씨라든가 말이죠 」 


「 !

    ………… 큭.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개자식들아! 아오바는 관계 없을 텐데!

    이 이상 내 주변을 말려들게 해 봐. 절대 용서 안 할 테니까!! 」 


「 하하, 무섭다, 무서워. 그만한 기세랑 집념이 있다면 필시 좋은 말이 되어줄 거 같네요 」 


「 어떠려나? 의외로 약할지도? 」 


「 그래도 다른 패거리보단 충분히 움직여주겠지. 뭐, 안 되면 그땐 그때야. 대신할 건 얼마든지 있어 」 


「 크…… 윽 」 


「 자, 남은 건 당신 혼자뿐입니다.

    그럼 가볼까요. 동료들에게로 」 


「 …………

    …… 망할, …… 다들, 미안하다…… 」 



「 ………… 미안………… 」 






「 뭐, 그 녀석도 아오바의 스크랩으로 풀려버린 거 같지만 말야 」 


「 네. 정말 굉장해요, 아오바 씨는.

    어쨌든 최근엔 그런 이유로 라임보다 리브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숫자가 아니라 소질이란 의미론 옛날 라임 쪽이 장래 유망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라임 자체는 룰도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무법 지대였지만,
    그렇게 날뛰는 말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항상 비정상적인 데이트가 두드러지는 참가자가 있어서 말이죠.

    그게 아오바 씨, 당신입니다 」 


「 대체 어떤 녀석일까 싶어서, 처음엔 그 정도 가벼운 기분으로 보러 갔는데.

    실제로 아오바가 라임에 참가한 현장을 보고 놀랐어 」 


「 설마 세이 씨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그래도 아오바 씨는 자기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데이터가 상당히 들쭉날쭉했으니까.

    실제로도 그랬었죠? 」 


「 ………… 」 


확실히 당시의 나는 내 힘의 의미 따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라임 필드에 서면 상대방의 약점을 어쩐지 「알게 되었다」.

다들 그렇겠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걸 아는 건 나뿐인 것 같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당시의 난 그걸 아는 자신이 굉장한 녀석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에 빠졌다.

그런 힘,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난 아무 생각도 없이 자기만 특별하다 믿고 우쭐거리고, 그러다……

대전 상대를…… 망가트려 버렸다.


「 본인한테 자각이 없다는 건 토우에가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지.

    그래서 아오바의 데이터는 우리가 전부 조작했단 얘기야 」 


「 그게, 토우에가 눈치채면 세이 씨처럼 가져가 버릴 테니까 말예요.

    뭐, 들키면 그땐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지만요 」 


「 그 뒤로는 라임에 아오바가 참가하진 않는지 체크해서 아오바를 만나는 게 즐거워졌어 」 


「 맞아, 맞아. 우리가 처음으로 아오바 씨한테 말을 걸었을 때 강렬했었지 」 






「 아오바, 그딴 새끼 패 죽여버려 」 

 

「 싫어, 귀찮아.

    죽여봤자 내가 손해 볼 뿐이고. 반죽음 정도면 딱 좋잖아 」 


「 그럼 내가 대신 해주지. …… 죽어! 

    헤헤, 라임에서 좀 이겼다고 우쭐거리기는 」 


「 어쩐지 니 가는 팔로는 맞아봤자 하나도 안 아플 거 같은데. 벌레가 쏜 정도밖에 못 느끼는 거 아니냐? 」 


「 시끄럽네 」 


「 누구 이쪽에 빨간 거 하는 놈 있어~? 어제 막 입수한 순도 높은 건데. 아오바는? 」 


「 필요 없어 」 



「 저기─, 여러분. 바쁘신 와중에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 


「 이봐, 야. 잠깐 그만하라니까 」 


「 …… 아─아. 지금 한창 좋을 때니까 방해 안 했음 좋겠수다만 」 


「 그렇게 말해도 말이죠. 이 근처에서 제멋대로 말썽을 일으키면 곤란하거든요 」 


「 그래, 그래 」 


「 하아? 무슨 권한이 있어서 그딴 말 하는 건데? 」 


「 뭐, 우린 부탁을 받았을 뿐이지만, 일단 이 일대를 꽉 잡은 분이 계시니까요 」 


「 뭐야, 단순한 똘마닌가 」 


「 그런 셈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우리가 나서서 단속해야 하니까, 여러분 슬슬 해산해주세요 」


「 …… 칫 」 


「 귀찮게 하긴. 야, 가자. 아오바도 가자고 」 


「 아아 」 


「 …… 아, 잠깐만요. 거기 당신.

    당신만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른 분들은 됐어요. 가셔도 됩니다 」 


「 …… 하? 나? 」 


「 그렇습니다. 갑자기 죄송해요. 얘기 좀 여쭤보고 싶을 뿐이니까 」 


「 ………… 」 


「 먼저 자기소개를 하죠. 처음 뵙겠습니다. 전 바이러스, 이쪽은 트립입니다 」 


「 잘 부탁해 」 


「 뭐야, 당신들. 비슷한 꼴 해가지고. 쌍둥이야? 」 


「 쌍둥이 아니거든요 」 「 쌍둥이 아니거든 」 


「 …… 장난해? 」 


「 아뇨, 아뇨.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 


「 그럼 뭔데 」 


「 좀 전부터 잠깐 지켜보고 있었는데, 라임뿐만이 아니라 싸움도 강하네요.

    당신이 걷어찼던 그 남자, 좀만 더 끌었으면 죽었을 걸요? 」 


「 ………… 

    별로 죽일 생각 없는데. 귀찮으니까 」 


「 과연. 라임 네임은 sly blue 였던가? 」 


「 …… 당신들, 라임에서 원수진 놈들 복수 대행인지 뭔지 그거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후딱 말해 」 


「 전혀 그런 거 아닌데. sly blue라면 라이머 사이에선 꽤 유명하잖아. 모든 대전에서 전승 불패라고 말이야 」


「 우린 당신의 팬이랍니다. 세라가키 아오바 씨 」 


「 ………… 」 


「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 마세요. 말 그대로의 의미로 다른 뜻은 없습니다. 우린 당신의 순수한 팬이라구요 」 


「 그래, 그래. 라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라든가, 봐주지 않는 점이라든가. 완전 멋있어 」 


「 …… 시시하네 」 


「시시합니까? 」 


「 아아. 라임뿐만이 아니라 전부 시시해. 뭘 해봤자 다 똑같고. 다를 게 없어 」 


「 그래도 라임엔 계속 참가하고 있잖아요?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닙니까? 」 


「 라임 자체를 즐기는 거 아니거든 」 


「 그럼, 무엇을? 」 


「 그딴 건 라임에서 상대를 『때려눕히는』 감각일 게 뻔하잖아 」 


「 그렇담 라임이 아니라 싸움이라도 상관없는 거 아냐? 」 


「 완전 달라. 물리적은 싸움은 몸에 상당한 데미지를 주지 않으면 못 이겨. 하지만, 라임은 달라.

    드러난 의식과 의식이 맞부딪쳐서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간단히 폐인이 된단 말이지.

    그렇게 물러터지고 위험한 걸 게임 감각으로 가볍게 맛볼 수 있거든? 이런 끝내주는 게임 또 없잖아.

    싸움 같은 거보다 훨씬 스릴이 있어 」 


「 …… 후후. 라임이 사실은 어떤 게임인지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폐인이 되는 리스크는 당신도 마찬가지인 건? 그렇게 되어버리면 스릴이고 뭐고 없을 거 같은데요 ​」 


「 안 돼. …… 알고 있으니까 」 


「 안다고? 」 


「 뭘 말이죠? 」 


「 ………… 」 


『 아오바, 슬슬 다음 게임이 시작된다 』


「 …… 아아, 다음은 누구더라 」 


『 여태까지 3번 싸운 적이 있는 상대다 』


「 또 덤벼온 거냐, 끈질기네. 슬슬 뭉개볼까 」


『 너무 지나치게 하지 않는 편이 좋아 』


「 알고 있어 」 


「 아오바 씨 」 


「 …… 아직 할 말 더 있어? 」 


「 대전 중엔 그다지 의식을 분산시키지 않는 편이 좋아요. 가능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 


「 하? 그딴 건 말 안 해도 알고…… 」 


「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보다 확실히 알 게 될 거야 」 


「 라임에서는 통상, 투영되지 않는 의식의 약점. 상대가 가장 건드려지고 싶지 않은 심리적인 상처를…… 더 알 수 있게 됩니다 」 


「 …………

    …… 뭐야, 니네 」 


「 그냥 팬이야 」 


「 그냥 팬입니다. 아오바 씨 」 



…… 두 사람과 만났을 때의 일은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과거의 기억이 애매한 탓도 있고 설마 이렇게 오랜 인연이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





머리가 무거워져서 고개를 약간 숙이자 머리카락을 강하게 홱 잡아당겨졌다.


「 …… 아! 으…… 윽! 」 


통증이 스쳐 가 얼굴을 찌푸린다. 바이러스가 뒤에서 내 턱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그렇지만 눈이 가려져 있는 탓에 바이러스가 어떤 얼굴인지 모른다.

바이러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른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 그때 느닷없이 서늘한 공포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 가만히 있어요, 아오바 씨. 거품을 제대로 씻어낼 수가 없잖아요? 」 


거기에 좀 전까지의 어조와는 다른 싸늘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만으로……

내 몸은 발작하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우, 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서, 아무튼……

도망치고 싶다.

무섭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


「 아아아아아아악…… !! 」 


물이 첨벙첨벙 튀어 올라 손이나 다리가 욕조 가장자리에 닿는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어깨와 다리가 억눌러져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다.

날뛰는 한편으로 난 자신이 아직도 이렇게나 공포를 느끼는 게 가능했구나 싶었다.

…… 감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는 마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그리 간단히는 죽일 수 없다.

그리 간단히는 인형이 될 수 없다.

살짝 들쑤시기만 해도 내 안에서 이렇게나 공포와 두려움이란 감정이 흘러넘쳐 나온다.

감정을 죽이는 일 같은 건, 그리 쉽게 되지는 않는다.


………… 세이.


「 으아아아아아악!! 」 


「 트립 」 


「 네에, 네 」 


트립이 늘 있는 일이라는 느낌으로 내 몸통을 꼼짝 못 하게 꽉 누른다.


「 아오바, 조용히 있자 」 


「 아아아아아악…… !!! 


그래도 내가 날뛰려 하자, 트립이 내 입을 한 손으로 막았다.

턱을 붙잡힌 채 손가락이 두 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 그…… 윽! 」 


굵은 손가락 끝이 혀를 짓누르고 안쪽까지 뻗어온다.

거친 피부의 촉감이 목구멍의 점막에 닿았다.


「 우…… 욱! 커, …… 커억, 쿨럭……, 우엑…… 」 


바로 구토감이 치밀어올라 나는 욕조 안에 씁쓸하고 시큼한 액체를 토해냈다.

위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에 위액밖에 안 나온다.

그럼에도 괴롭다. 눈물이 고인다.


「 자, 아오바 씨 」 


두 사람의 지나치게 냉정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린다.


「 아, 하아……, …… 윽 」 


구역질 탓에 내가 발버둥 치는 걸 멈추자 입 안에서 트립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 참 잘했어요 」 


얌전해진 내게 싱긋 웃고 있을 바이러스가 말을 걸어온다.


「 물이 더러워져 버렸네요. 샤워기로 몸을 씻고 나서 나가기로 할까요 」 


「 하아……, 으…… 」 


「 일어서, 아오바 」 


두 사람에게 부축을 받아 나는 비틀거리며 느릿하게 일어섰다.

샤워기의 물이 다시 몸에 쏟아지고 더러운 게 씻겨져 흘러간다.


「 우리, 옛날의 아오바가 멋있어서 진짜 좋아했었지만, 지금의 아오바도 아주 좋아해 」 


「 네. 인간인데도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을 간직한 아오바 씨라는 존재가 너무 좋답니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일로 싫어하게 되진 않아요 」 


「 그래, 그래. 정말 좋아해, 아오바 」 


「 ………… 」 


매일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대사. 똑같은 말.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거기에 솟아나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샤워로 몸을 씻은 다음 나는 두 사람에게 이끌려 욕실을 나섰다.


욕실에서 나오자 두 사람은 내 몸이나 머리카락을 닦았다.

내가 아파하는 게 가엾다는 이유로 드라이어는 항상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눈가리개는 아직 벗을 수 없다.

언제 벗겨줄지는 모른다. 두 사람의 기분에 달려있다.

젖은 눈가리개의 천이 기분 나빠도 말할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좀 전의 공포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 나는 두 사람의 기색에 과민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몸은 당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서 항상 긴장하고 있다.

그런 자기 자신에게 몇 번째인지 모를 실망을 품는다.

그저 마음이 복종하기에 가장 편한 상태를 취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익숙해진 것도, 마비된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이 나 자신을 속이려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아주 작은 변화를 보인 것만으로도 이렇게 겁을 먹고 말다니……

이래서야 마치 노예다.


「 깨끗해졌네요, 아오바 씨. 아까 더럽힌 곳도 정리했고.

    나머지는 어느 쪽 방에 갈까, 겠군요.

    아오바 씨가 골라주세요 」 


바이러스의 말을 이어받는 것처럼 트립이 내 손을 가볍게 만지며 재촉한다.


「 아오바. 오른손과 왼손, 어느 쪽이 좋아?

    손을 뻗어서 좋아하는 쪽을 건드려 봐 」 
 



Posted by Rosier 
:

내가 선택하고 싶은대로 하면 필시 엔딩이 열리지 않을 게 뻔하므로 공략은 필수.

사실은 이거저거 다 들쑤셔보는 게 재밌지만 이 게임은 공략에 충실해야 더러운 꼴을 오래 안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번역이 달리지 않은 건 공략하지 않은 부분입니다(아직 플레이 중이라 언제 올클할 지 기약이 없는 상태).

안 해보고 번역하면 상황을 몰라서 오역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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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출처 : http://ameblo.jp/chiharoom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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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엔딩 참고 수치

뱀파이어 엔딩 : 흡애도 90 / S도 15 / M도 50

맨서번트 엔딩 : 흡애도 90 / S도 40 / M도 20

브루트 엔딩    : 흡애도 90 / S도 20 / M도 40

 

각 엔딩은 SM도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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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공략법

우선은 시츄에이션 파트를 하나씩 차례로 봅니다.

보는 도중에 한 번 스타트 버튼을 눌러 세이브 해두면 나중에 챕터 선택이 편해집니다.

그때 흡애도는 제대로 올립니다.

그리고 스토리 파트에서 SM도를 조절해 각 엔딩을 엽니다.

수치는 위에 써진 대로입니다만 아래의 순서가 빠른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 엔딩 회수

Dark 07~10 / Maniac 7~10 / Ecstasy 07 M선택(그 외에는 S)

② 브루트 엔딩 회수

Ecstasy 07 S 선택지로 다시 선택

 맨서번트 엔딩 회수

Maniac 07~10 S선택지로 다시 선택

 

모든 엔딩을 회수하고 난 뒤 좋아하는 순서대로 감상하는 걸 추천합니다.

각 루트를 보는데 걸린 시간은 오토모드로 3.5~4시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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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미 형제 루트는 사카마키 형제 중 한 사람 이상 클리어해야 열림.

 

제일 왼쪽 : 무카미 루키

왼쪽에서 두번째 : 

왼쪽에서 세번째 :

제일 오른쪽 :

Posted by Rosier 
:

헉헉... 게임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카나토 완전 좋아) 게시판을 새로 만들고 싶은(=번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페이지에 공략을 몰아놔야 보기 편하죠.

일단 번역은 해놨지만 올 클리어 전이라서 하지 않은 부분(아야토, 카나토 이외)은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건 게임하면서 수정할 예정이니 볼 사람은 참고하세요.

 

원본 출처 - http://bitaten.blog108.fc2.com/blog-category-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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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 ・ 레이지 ・ 스바루는 루트 제한이 있습니다 (초회 공략 불가, 2회차 이후 가능)

 

【엔드 회수】

・ 엔드 01 → M도를 올린다

・ 엔드 02 → S도를 올린다

・ 엔드 03 → 약 반반(무많이)

 

※ 호감도만 올려 놓으면, 시나리오 선택 [07]부터 들어가서 S도와 M도 수치를 조절하면 각 엔드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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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선택】

● 표가 붙어 있는 선택지를 골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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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시나리오】

캐릭터 엔드 3종을 클리어 하면 열립니다. (일종의 애프터 스토리)
 


Posted by Rosi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