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려

   기다리라니까, 커티스! 」

 

「 뭡니까, 프린세스? 」

 

「 걸음이 빠르잖아! 좀 더 천천히 걸어! 」

 

「 왜 제가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제가 빠른 게 아니에요. 당신이 느린 겁니다 」

 

「 그야 커티스랑 비교하면 느리겠지만

   여자한테 맞춰줘. 기초체력이 다르니까 따라갈 수가 없어 

 

「 저는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한테 맞춰주세요. 서두르면 되잖아요 」

 

커티스는 차갑게 말하고 저벅저벅 걸어간다.

아주 조금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 (울컥울컥) 

   … 커티스 구두쇠 」

 

「  전 구두쇠가 아니에요. 돈을 쓸 때는 씁니다 」

 

「  」

 

차갑지만, 제대로 대답한다.

기본적으로 지는 걸 싫어하는구나….

 

「 빨리 갑시다…. 좀 더 서둘러 주세요 」

 

저벅저벅저벅.

모래가 튀는 것을 막으며 걷는 나와 거침없이 걸어가는 커티스.

사막의 모래는 미세하다. 

발이 빠지기 쉬워서 걷기 편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커티스는 정돈된 길을 걸어가듯 순조롭게 걷는다.

 분하다.

 

「  쓸 땐 쓴다는 건, 안 쓸 때는 안 쓴다는 거지? 」

 

「 당연합니다.

   필요할 때 쓰고, 필요없을 때는 안 써요.

   전 쓸데없는 지출도 싫어합니다 」

 

「 역시 구두쇠잖아 」

 

「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죠 」

 

「 필요할 때 이외엔 쓰고 싶지 않은 거잖아? 낭비가 없다는 점이 구두쇠란 거야 」

 

별로 커티스가 구두쇠든 아니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딱히 정색하고 말다툼할 일은 아니다.

다리에 달라붙는 모래가 기분 나쁘다.

구두에 들어가 바닥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땀에 붙어서 발 밑을 구른다.

… 싸움을 하기엔 딱 좋은 불쾌감이다.

평상시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로 정색을 하고 트집을 잡는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커티스도 그랬다.

 

「 사용할 곳을 알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필요한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당신은 낭비가 많을 것 같네요 」

 

「 그렇지 않아. 커티스 쪽이 평소엔 절약하고 있어도 큰 쇼핑엔 실패할 것 같네.

   구두쇠들은 그런 일이 많으니까 」

 

「 왕족처럼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잖아요.

   제 돈을 어떻게 사용하든 제 마음입니다. 

    저는, 신분이 높은 사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

 

「 그거 왕궁에서 말하면 모욕죄나 불경죄가 될 거야 」

 

「 여기는 왕궁이 아닙니다 」

 

「  기분이 안 좋나보네 」

 

「  당신도 말이죠.

   어째서 이런 사막 한가운데서 구두쇠인지 어떤지에 대해 논해야 하는 겁니까? 」

 

지당하다.

사막에서 싸움까지 해가며 얘기 할 내용은 아니다.

알면서 트집을 잡았다.

 

「  화풀이야 」

 

「  

   …… 화풀이입니까 」

 

「  그래, 화풀이 」

 

「 어른스럽지 않네요.

   저한테 시비를 걸었단 말이죠 」

 

「 화내지 마! 그치만 커티스도 잘못했다구? 속도 정도는 늦춰달란 말이야! 」

 

내가 짜증이 나는 건 구두 안이 모래투성이로, 커티스가 걷는 속도를 늦춰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티스는 거침없이 능숙하게 모래를 미끄러져 걷기 힘든 모습은 아니다.

커티스가 순조롭게 걷는 것이 더욱 더 화가 난다.

 



「  미안하게 됐네. 난 당신같은 재주는 없어.

   커티스는 왜 기분이 안 좋은 거야? 」

 

내가 짜증을 내는 건 이유가 있지만, 어째서 커티스까지 짜증을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막에서도 걷는 데 문제는 없고 스피드도 빠르다.

화가 날 이유가 없다.

 

「  빨리 사막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

 

「 ? 」

 

「 … 사막에서도, 저녁 이후라면 견딜 수 있습니다만 」

 

「 ??? 

   … 즉? 」

 

「 저는 천천히 걷는 것도, 쓸데없는 지출을 하는 것도, 신분이 높은 인간도 싫습니다만,

   더 싫은 게 있습니다 」

 

커티스는 저벅저벅 저벅저벅 걸어간다.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 ? 뭔데??? 」

 

「  

   전

   더운 게 싫거든요 」

 

「  하? 」

 

커티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다시 한 번 말해 드릴까요? 전 더운 게 싫습니다 」

 

「 더운 게 싫다니…, 그치만, 사막이 더운 건 」

 

「 사막이든 어디든, 더운 건 싫습니다 」

 

「 여기는 기르카타르니까 」

 

「 더운 건 싫습니다 」

 

커티스는 타이르는 것처럼 반복했다.

어조가 강해지지는 않았지만 박력이 있다.

딱히 무슨 짓을 당한 것도 아닌데 중압감을 느꼈다.

 

「 기르카타르는 좋은 나라입니다만, 더위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

 

「 더운 게 싫다는 말 같은 걸 하고 있다간 생활할 수 없을텐데, 이 나라에서는. 

   언제 활동하는 거야?」

 

「 낮에는 실내에 있든가 자면서 보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일은 밤에 하는 게 많아요.

   더운 시간에 일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래서 전 암살자라는 직업을 좋아합니다. 천직이에요 」

 

「 ….

   더운 게 싫어서 암살자가 된 건 아니겠지 」

 

「 살인에 대한 저항이 없었다거나 재능이 있었다던가 같은 다른 이유도 있어요 」

 

「  저항이나 재능이랑 같은 레벨이구나 」

 

「 직업 선택의 커다란 이유라구요. 

   암살자 같은 건, 기르카타르에 널려 있어요.

   한 사람쯤 더운 게 싫어서 암살자가 된 남자가 있어도 되겠죠? 」

 

「 그치만 그 한 사람이 암살자의 정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을 동경하는 암살자 견습이 물어봐도 취직 이유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

 

엄청 실망할 것 같다.

반대로 신격시되거나.

 

「 그런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제 지위를 노리는 자나 라이벌에게는 가르쳐 준 적이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인간이 더운 게 싫다는 이유로 암살자가 되었다고 들으면 굴욕이잖아요?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다고 들이대면 싫겠죠 」

 

「 싫기는 커녕…. 

   죽이고 싶어지겠지 

 

「 그래도 죽일 수 없어요. 저를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면 벌써 제 지위에 올라 있을 겁니다.

   즐겁다구요∼ 아랫사람을 놀리면 더위가 잊혀집니다 」

 

「 

   커티스…. 당신은 적이 많겠어 」

 

….

… 응?

아랫사람을 놀리면 더위가 잊혀진다고?

 

「  지금 내가 그 대상이거나 그래? 」

 

「 아하하. 설마. 아무리 더운 걸 싫어하는 제가 대낮에 사막을 걷는 처지가 되었다고 해서, 프린세스를 괴롭히다니

    놀리다니 당치도 않아요. 

   제법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지고 있거든요? 」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닌데 오싹하다.

뜨거운 사막 안에서 추워졌다.

 

「 제 경우는 엉뚱한 화풀이가 아니죠?

   이렇게 더운 와중에 사막을 걸어야만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탓이니까 당신한테 화내는 건 도리에 맞아요」

 

「 그렇게 더운 걸 싫어할 줄은 몰랐어. 따라오게 해서 잘못했 」

 

누가 커티스 나일 씩이나 되는 사람이 더운 게 싫어서 기분이 나빠진다고 상상할 것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도 죄는 아니다.

그러나 사과해두는 편이 좋다.

동물로서의 본능과도 같은 것으로, 어쨌든 사과하려 한다.

 

「 괜찮은데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른해질만큼 덥고 녹초가 될만큼 더운, 이렇게 뜨거운 사막을 끝없이 걷는 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더우니까, 빨리 걸어 주세요 」

 

「  」

 

무서워….

본격적으로 불쾌하다….

 

「 그렇게 성큼성큼 걸으면 더 더워지는 거 아냐? 」

 

「 다른 데 정신이 팔리면 괜찮습니다. 걷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아니면 뭡니까? 당신이 제 기분을 전환시켜 주실 겁니까? 」

 

커티스는 불쾌한 것처럼 태양을 향해 눈을 찌푸렸다.

 

「 빨리 해가 저물면 좋을텐데 」

 

「  완전 동감이야 」

 

무섭다, 무서워.

더운데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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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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