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나일 : 오아시스 1
Games/Arabian's Lost 2014. 4. 6. 04:51 |「 날도 저물어 가네요. 돌아가기 전에 쉬었다 갈까요 」
「 오늘은 더이상 예정이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
「 ………… 」
「 무슨 일이죠?
…… 왠지 불만스러워 보이네요 」
「 그야 즐겁게는 안 보이겠지.
커티스, 당신 어디서 사과를 꺼낸 거야? 」
커티스는 짐 같은 건 들고 다니지 않았다.
사과는 두 개째.
…… 나한테 권하지도 않고 덥석덥석 먹고 있다.
「 비밀 주머니가 있거든요 」
커티스는 옷을 탁 두드렸다.
말을 듣고 옷을 보지만, 아무리 봐도 사과를 두 개나 숨기는 건 무리다.
그 이전에, 겉모습을 보고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과를 두 개나 그대로 넣으면 어떤 주머니라도 불룩해진다.
「 암살자뿐만이 아니라 마술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
「 하하, 전직을 생각해두죠. 은퇴하고 마술을 하는 것도 재밌겠군요 」
「 전직 암살자라면 나이프 던지기 같은 것도 잘 할테니까 말이야 」
「 …… 나이프 던지기를 하는 건 마술사가 아니라 곡예사예요 」
「 아아, 그런 것도 어울릴지도 」
멍하니 내용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얘기를 계속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 배가 고프십니까? 」
「 저녁인걸. 고픈 게 당연하잖아.
…… 사과 맛있어? 」
「 맛있는데요? 뭐야, 먹고 싶었던 겁니까?
두 개밖에 없으니까 제가 먹던 거라도 괜찮으면 나눠드릴게요 」
「 …… 여기요 」
쫘악, 커티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사과를 둘로 잘랐다.
깨끗한 단면이다.
뭘로 잘랐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 암살에 사용했던 무기라면 싫은데.
「 먹고 싶었다면 말해주셨음 좋았을텐데 」
커티스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보통은 먹기 전에 묻잖아?
눈치가 없네…… 」
갑자기 묻지도 않고 자기만 먹기 시작하다니, 눈치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다.
커티스는 앉자마자 조용히 사과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먹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 그건 실례했습니다.
『평범』한 예절 교육은 받지 않았기 때문에.
…… 전 슬럼에서 자랐다구요? 눈치 빠른 남자가 될 리 없죠.
그런 남자가 취향이시라면 저 같은 거랑 동행하지 말아주세요 」
홱, 차갑게 뿌리친다.
「 커티스는 내가 싫은 거야? 」
「 ………….
왜 제가 당신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충고했을 뿐이잖아요? 」
「 그치만…… 」
충고라고 하기엔 말이 너무 과하다.
동행하는 게 싫다, 너 따위랑 있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들렸다.
「 약혼자 후보로 지명된 탓에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싫은 거잖아…… 」
함께 지내는 동안 그가 커티스 나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릴 뻔 했다.
최강의 암살자라 칭송받으며 일을 하면 거액을 벌 수 있는 그가 낮은 레벨밖에 안 되는 나랑 어울려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러니까, 대체 왜……
…………
…… 죄송합니다, 제 탓이군요 」
커티스는 사과를 안 든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 …… 전 입이 거친 것 같습니다.
말투가 과격하다고 부하한테도 자주 들어요. 슬럼가의 인간에겐 이런 말투는 안 된다고.
심하게 할 생각은 없는데도 말이죠……. 일반적인 말투보다 험한 것 같아요 」
한 손을 머리에서 떼고 이번에는 사과를 베어먹기 시작한다.
커티스치고는 드물게 침착성이 없다.
「 슬럼에서 자라 품위가 없어요. 너그럽게 봐 주세요.
너그럽게 볼 수 없다면 저 같은 건 부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당신처럼 고귀한 사람을 즐겁게 할 재주 따윈 없어요 」
「 ………… 」
「 …… 또 했네.
또 그랬죠? 말투가 심했어요 」
안절부절 못하며 사과를 베어 먹는다.
감정을 드러낸 커티스는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보다도 『평범』해 보였다.
「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저랑 당신은 안 맞는다는 겁니다.
…… 비꼬는 거 아니예요?
전 세련되지 않으니까 당신이 짜증내지 않을까 싶어서…… 」
「 ………… 」
나보다 커티스 쪽이 훨씬 짜증내고 있다.
「 나도, 태생은 좋을지도 모르지만 품위는 없는데? 기르카타르의 왕녀가 고상하게 자랄거라 생각했어? 」
「 그래도 당신은 왕녀입니다. 먹을 걸 얻으려면 빼앗아야만 하는 경험도 했던 적이 없어요.
…… 나쁘게 듣지 마세요. 태생이 다르면 당연한 일입니다 」
「 슬럼에 살았던 적은 없으니까, 그래, 이해한다는 생각은 안 해 」
「 당신은 『평범』한 걸 좋아하죠? 전 평범하다고 하기엔 좀, 사람을 죽이는 게 지나치게 능숙합니다.
약간…… 망가져 있거든요.
『평범』하다는 게 어떤 건지 몰라요.
암살자란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모두 그렇죠. 기준이 어긋나 있어요 」
「 커티스한테 『평범』따윈 요구 안 해. 명백하게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다 아는 걸 」
다만, 아주 가끔 『평범』해 보일 때도 있다.
희소한 포인트라 인상에 남았다.
「 『평범』해지고 싶으면서 『평범』하지 않은 남자를 동행시키다니, 당신은 특이하네요.
…… 전 고위의 인간은 싫어합니다만,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에겐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
「 커티스…… 」
단순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쏠린다.
기대고 있던 나무에 등을 꾹 눌렀다.
「 …………
태생도 의견도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인데, 저도 유별나네요∼…… 」
「 …………
…… 커티스. 당신, 한 마디가 많아 」
「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맞는데, 당신이 좋아해주길 바라다니 이상하잖아요?
어째서일까요? …… 딱히 미인이라거나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닌데 」
…… 박살냈다.
자기가 분위기를 띄워놓고 자기가 박살낸다.
한 마디는 커녕, 두 마디도 세 마디도 많다.
「 성격이 좋은 미인이란 완벽한 여자가 있으면 죽이고 싶어지니까 당신은 그걸로 좋지만 말이죠.
봐요, 완벽한 건 부수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런 적 없어요? 」
「 …… 없어 」
「 역시, 의견이 안 맞네요∼ 」
커티스는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안 맞는 게 기쁜 것 같다.
「 어쨌든, 전 눈치가 없는 남자니까 그 점은 양해바랍니다.
당신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죽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뭐든 말씀해주세요.
제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으면 사과가 사라질 겁니다 」
「 알았어. 다음부터는 생각한 건 바로 말하도록 할게 」
「 그래요. 원하는 건 빼앗아야죠. 사양말고 언제든 」
「 …… 당신을 상대로 빼앗을 수 있는 인간이 있으리란 생각은 안 드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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